2008년 10월31일, '사토시 나카모토(Satosi Nakamoto)'라는 미지의 인물이 인터넷에 디지털 화폐를 설명하는 9장짜리 백서를 올렸다. 비트코인의 탄생을 알린 신호탄이다. 초기엔 개념조차 모호해 관심받지 못했고, 화폐로서 가치도 없었기에 사토시란 이름도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하면서 일반인들 관심이 커졌고, 최초 개발자로 알려진 사토시 나카모토가 누구냐는 궁금증이 증폭됐다. 인터넷 공간에서 활동하던 그는 2010년 말 돌연 종적을 감췄다. 2011년 4월 동료 개발자에게 작별을 알리는 이메일을 보낸 게 마지막 행적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2014년 3월, 당시 64세인 일본계 엔지니어 '도리안 나카모토'를 비트코인 창시자로 특정해 보도했다. 2개월에 걸친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 사토시를 추적했고, 수십년간 엔지니어링 분야에 종사한 이력을 증거로 제시했다. 당사자로 지목된 도리안 나카모토는 강하게 부인했고, 온라인에 등장한 사토시는 '나는 도리안 나카모토가 아니다'라고 밝힌 뒤 다시 사라졌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흥미로운 재판이 진행 중이다. 2013년 4월 사망한 데이비드 클라이먼의 유족이 동업자인 크레이그 라이트(51)를 상대로 약 100만개의 비트코인 소유권을 놓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현 시세로 640억 달러(75조5천억원) 상당이다. 클라이먼과 라이트가 모두 사토시이고, 따라서 사토시 소유의 비트코인 100만여 개 가운데 절반은 유족 몫이란 주장이다.
미 언론은 재판을 통해 베일에 가려진 비트코인 창시자의 정체가 드러날지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자칭 사토시는 여럿이었으나 빈약한 증거로 확신을 주지 못했다. 호주 출신 프로그래머로 영국에 거주하는 라이트는 2016년부터 자신이 비트코인 창시자라 주장하나 오락가락 행태로 믿음을 잃었다.
비트코인은 중앙집중적 금융권력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이 탄생 배경이다. 디지털 블록체인 시스템을 기반으로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는 개인 간 거래가 핵심 포인트다. 수천 년 화폐 역사를 뒤흔든 창조의 아이콘은 여전히 얼굴을 감추고 있다. 혁명적 발상인 디지털 화폐를 무슨 동기로, 어떻게 구현했는지 궁금하다. 재판 과정에서 창조주 정체가 밝혀지고, 세기의 수수께끼가 풀렸으면 좋겠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