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유일하게 20세기 냉전의 잔재가 남아있는 곳이며 한강하구는 그 상징이다. 철책의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남북의 뼈아픈 역사가 녹아 있다. 그런 철책이 제거된다는 것은 본래의 역사와 공간을 되찾아 시민에게 돌려주고, 새로운 평화와 미래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숭고한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철책의 일부는 제거되고 일부는 그대로 남아있게 된 현재의 상황은 마치 현재의 남북관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지난 10일 철책 제거 한강하구엔 희망 리본
한반도에 유일하게 남은 냉전 상징 역사유산
남북은 같은 민족, 역사, 언어라는 동질성으로 통할 수 있는 관계이지만 때로는 다른 민족, 다른 국가보다도 못한 대립과 갈등의 관계를 안고 있기도 하다.
이에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한의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했다.
남북관계가 특수관계에서 본래의 한민족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평화협정을 통해 정전체제를 종식하고, 단계적으로 평화체제와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그때가 되어서야 한강하구의 철책은 오롯이 다 걷힐 수 있을 것이다. 즉, 철책을 전부 제거하는 일은 성급하게 접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강하구 철책 제거에 대해 일각에서는 일부가 아닌 전부를 제거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첫째, 철책은 김포시의 유산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와 전 인류의 역사문화 유산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와 함께 냉전의 상징국가였던 독일은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며 통일에 이르게 되었다. 통일 과정에서 동서독을 가르고 있던 철조망과 군사시설을 성급하게 모두 다 걷어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성급한 역사 지우기에 대해 엄청난 후회를 하게 됐다. 독일 분단의 상징이었던 철책과 장벽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사문화유산이 될 수 있는지 너무 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중국과 대만의 아픈 역사를 안고 있는 도시인 샤먼(중국), 진먼(대만)의 경우 관계가 개선된 후에도 전쟁의 역사를 전부 다 걷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전장문화를 보전·발전시켜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개발했고, 이를 통해 양 도시 간 교류협력과 관광수익을 증대시킬 수 있었다.
둘째, 아직 남북관계는 정상화되지 않았고 우리에게는 국가안보라는 중대한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접근권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의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서는 국가안보가 선행돼야 한다.
따라서 국가안보상 필요한 철책을 무리하고 조급하게 제거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남북관계가 여전히 정전협정 체제에 묶여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철책의 완전철거는 불가능할 것이며, 국방부 의견도 존중돼야 할 것이다.
獨도 통일 과정 철조망 성급히 걷어내 후회
새 평화의 길… 남북관계 정상화 선행돼야
한강하구 철책 제거는 새로운 평화가 시작되는 길을 내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 만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한강하구 철책은 마지막 남은 냉전의 상징으로 감히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를 갖고 있다. 전 인류의 역사문화 유산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반드시 일부 보전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시민의 편의를 강화하자는 단편적인 발상으로 인류의 역사문화 자원과 국가안보의 마지노선을 송두리째 걷어내자는 주장들이 받아들여져서는 안 될 것이다. 새로운 평화로 가는 길은 어렵지만 시민들이 그 중요성을 깨닫고 함께 걸어갈 때 조금 더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정진화 성신여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