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 '매몰비용(sunk cost)'이란 개념이 있다. 이미 지불되어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뜻한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의사결정을 할 때 매몰비용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흔히 매몰비용에 집착하다 의사결정을 그르치곤 한다. 득 될 게 없는데도 그동안 투입한 비용과 노력이 아까워 고집하다 더 큰 화를 자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제투자는 물론이고 정책추진 과정에서도 흔히 '매몰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를 범하는 이유다. 그만큼 매몰비용을 떨쳐낸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이재명 후보도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강행할지 철회할지 놓고 적지 않은 고민을 했을 게 분명하다.
옳다고 판단땐 밀어붙이는 스타일
첫 공약 '전국민 재난금'을 철회했다
매몰비 얽매이지않고 손절매 다행
결과적으로 매몰비용에 얽매이지 않고 이 정도에서 손절매한 건 다행이다. 그는 18일 "전 국민 재난지원금, 고집하지 않겠다. 여야 합의 가능한 것부터 즉시 시행하자"며 물러섰다. 지난달 29일 전 국민에게 1인당 30만~50만원가량 재난지원금을 추가 지급하자고 제안한 지 20여 일 만이다. 그동안 기획재정부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강하게 반대했지만 그는 강행 의지를 꺾지 않았다. 오히려 여당은 기재부를 압박하며 이재명표 재난지원금 지급에 힘을 실어줬다. 민주당은 초과 세수를 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는데, 이게 꼼수 논란으로 이어졌다.
기획재정부가 기를 쓰고 반대하고 나선 건 위법 소지 때문이다. 국가재정법과 국세징수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지급하는 건 무리하다는 판단이었다. 납부 유예 또한 명분 없고, 내년으로 초과 세수를 이월하더라도 지방교부세와 교부금부터 정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역시 "재정 원칙과 기준을 견지하는 건 기본 소명"이라며 곳간지기로서 원칙을 강조했다. 야당 또한 "초과 세수 납부유예는 꼼수이자 범법행위다"라면서 "기재부를 포함해 공직자들이 동조한다면 법적 책임을 묻고 고발 조치하겠다"고 압박했다.
부정적 목소리도 높았다. '지급 가능한지'를 떠나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확대됐다. 코로나19 때문에 국가부채가 급증했는데 빚을 갚는 대신 재난지원금으로 나눠 갖는 게 사회정의에 부합하느냐는 의문이었다. 설령 초과 세수를 사용하더라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우선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상식론을 폈다. 여론조사는 이 같은 의식을 엿보게 했다. 응답자 가운데 60.1%는 '반대한다'고(한국사회여론연구소, 5~7일) 답했다. 반면 '찬성한다'는 32.8%에 그쳤다. 한국리서치 여론조사 또한 '공감하지 않는다' 67.9%로, '공감한다' 29.3%보다 2배 이상 높았다.
결국 '국민 대다수가 원치 않는데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지급하려는 의도가 무엇이냐'로 논점이 모였다. 이재명과 여당은 대선을 앞둔 매표행위라는 공격에 딱히 반박하기 어려운 궁색한 지경에 처했다. 여론을 등에 업지 못한데다 '당정 충돌'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강행은 매몰비용을 더 키울 악재로 작용할 게 분명했다. 이재명은 "아쉽다"고 했지만 추가 매몰비용 없이, 더 큰 논란으로 확대되지 않는 상황에서 마무리됐다는 점에서 굳이 손익계산을 하자면 득이라는 판단이다. 이재명은 장점으로 내세우는 '강한 추진력'이 때로는 매몰비용을 키우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냉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도자 추진력 함께 유연함도 중요
세종, 경연통한 오류 최소화 기억을
지도자에겐 강한 추진력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유연함이 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 뛰어난 철인 한 사람보다 평범한 집단지성이 훨씬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국가를 운영하는 최고 지도자라면 옳은 결정일지라도 반대 목소리를 경청함으로써 오류를 최소화하려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조선 왕 27명 가운데 최고로 평가받는 세종대왕은 재임 기간 신하들과 1천500회가 넘는 경연(토론)을 통해 오류를 최소화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前 국회 부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