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둥글고 어깨뼈처럼 여덟 개의 긴 다리가 나와 있다. 다리에는 둥근 꽃 같은 게 맞붙어 줄지어 있다." 정약전이 '자산어보'에 기록한 문어(文魚)의 형상이다. 빨판을 줄지어 핀 꽃으로 묘사한 문장이 압권이다. 문어는 바다의 카멜레온이다. 자유자재로 몸 색깔을 바꾸어 위장하니 빨판을 꽃이라 한들 어색할 리 없다.
문어의 어원은 사람의 민머리(대머리)를 닮은 데서 유래했다는 설과 선비의 먹물을 지니고 있다 해서 '글월 문(文)'이 붙었다는 설이 부딪힌다. 애초에 어부들이 먼저 불렀을 이름을 생각하면 전자가 유력하지만, 후자의 설도 만만치 않게 회자된다. 영남지역 양반가 제사상에 빠짐없이 올라가는 풍습이 선비 문어의 이미지를 강화시켰다.
실제 문어는 돌고래만큼이나 높은 지능을 가진 어류로 유명하다. 문어마다 성격이 다르고, 단기·장기기억을 구분하고 사람과도 교감할 줄 안다니 대단하다. 올해 아카데미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은 실제로 인간과 교감하는 문어가 등장해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인류가 상상하는 초문명의 외계인들 두상이 문어를 닮은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영국 동물복지국이 최근 문어, 오징어 등 두족류와 바닷가재, 게 등 십각류에 대해 "고통을 느끼는 지각 있는 동물이라는 것이 확인됐다"며 "새로운 동물복지법안에 포함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가 발주한 연구용역 결과 두족류와 십각류도 통각 신경이 있어 외상을 당하면 상당한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새 동물복지법이 하원을 통과해 상원에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니 장난이 아니다. 법안이 통과되면 해당 어류들은 전기 충격으로 통각 신경을 마비시킨 뒤 요리해야 한다.
동물복지의 세계적 추세는 척추동물에서 무척추 어류로까지 확대되는 추세다. 영국의 동물복지법을 적용하면 생물을 회 뜨고 데쳐 먹는 우리의 어류 요리 문화는 야만이 될 수 있다. 얼마 전 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불거진 개 식용 금지 입법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대선 국면에서도 계속 소환될 정도로, 우리 동물복지 논의 수준은 걸음마 단계이다.
동물을 음식문화의 일부인 식재료로 볼 것인지 인격화된 권리의 주체로 여길지는 전적으로 사회적 합의에 따를 일이다. 여론과 법으로 강제하기엔 장구한 세월 축적된 식문화의 저력이 만만치 않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