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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년 김해문화재단 대표이사
대선과 지방선거의 시절이 왔다. 법에 따라 5년마다 속절없이 찾아와서 속속 일상을 뒤흔들어놓은 뒤 잊은 듯 시간을 보내면 또 속절없이 찾아온다. 만약 우리가 선거의 주기적인 방문을 받으면 받을수록 점점 능숙하고 노련하게 대처하게 되는 공식 속에 있었다면, 매번 좀 더 나아지는 맛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쉽게도 더해지는 단맛보다는 감해지는 쓴맛을 더 많이 보았던 것 같다. 그런데도 삶의 변화와 나아가는 문명을 기대하는 마음을 저버릴 수 없다.

대선·지방선거의 시절이 왔다
후보들은 예외없이 문화강국 언급
국가경쟁력을 갖추겠다고…


인류의 삶에 있어서 문화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예술의 가치가 허투루 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일상에서 느끼고 있다. 알다시피 전국 12개 도시가 법정문화도시로 지정되어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시민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도시성장을 위한 '문화적' 과정을 기획, 실천하고자 원탁회의가 만들어지고, 인접 도시와 협업하여 행정구역이 아닌 생활구역으로의 삶을 돌아보기 시작하였으며, 동네의 문제를 스스로 발견, 이를 해결하고자 나서고 있다. 말하자면 정치, 경제, 행정, 과학 등이 그동안 '전문적 영역'이라는 강력한 울타리를 치고 그 속에서 의사결정이 다 이루어졌던 '전문가의 시대'에서, 생활 속에서 구현되지 않으면 전문 영역이라는 허상이 내 삶에서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채 가는 과정이 시작, 21세기가 요구하는 '시민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라 본다. 법정문화도시는 한 도시가 5년 동안 시민의 손으로 도시를 만들어가는 실험을 하여 그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는 중요한 사업이며, 과정을 오롯이 겪어내지 못하면 결코 '내 것'이 되지 못한다는 자각이 통용되는 사업이다.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은 무거운 책임을 갖는다는 점에서 민주시민, 민주주의 국가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김해시도 2차 지정 때 법정문화도시가 되었다. 비록 투·융자심사가 늦어 하반기에 예산을 받아야 하는 절차로 인해 진행의 더딤이 있기는 하나,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만남의 어려움이 있어서 마스크로 가린 얼굴을 겨우 확인할 수 있는 온라인 모임을 주로 하고 있기는 하나, 사업에 참여하는 김해시민들은 활기찬 적극성을 갖고 스스로 일구고 있는 결과에 대해 비장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시민들의 토론 과정, 기획 과정, 그리고 스스로 실천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오히려 공공기관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예술인·시민놀이터보다는
관리자놀이터 비중… 이젠 변화를


다시 선거 이야기를 하자면, 5년마다 오는 대선과 4년마다 지방선거를 치를 때마다 우리는 '공약'이라는 것을 살펴본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약'이란 정당이 국민에게 제시하는 정책내용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선거가 앞에 있으면 그동안 누락되었던 정책을 점검하고 이를 보완하거나 신설하여 놓치지 않도록 많은 의견이 물 위로 올라온다. 이번 대선 후보자들은 예외 없이 '문화강국'을 언급하고 있고 이에 대한 국가경쟁력을 갖추겠다고 말한다. 1980년, 국제기구 유네스코는 "예술가는 사회생활과 사회 진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그에게는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당연히 부여해야 하고 또한 다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그 안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한편, 예술가의 창조적 영감과 표현의 자유를 보존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고려"하라는 내용을 '예술인의 지위에 관한 권고'에 명시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또한 예술인을 위한 정책이 조금씩 나아가고 있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예술가의 안전, 창의적 활동의 기반, 그리고 성장을 위한 정책으로는 모자란 구석이 많다. 다시 말해 형식은 갖췄으나 내용의 질은 다시 따져야 할 때라는 것이다. 현재 문화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공공공연장, 미술관이 '관리자의 놀이터'로서의 비중이 컸고, 반면에 '예술인들의 일상적인 창작 놀이터'이자 '시민들의 향유 놀이터'가 되기에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과거, 시절의 비전에 따라 운영되었지만 문화지형의 변화가 상당한 지금, 사회적 가치와 책임을 놓치지 말아야 할 시기라고 본다. 그래서 더더욱 '하나의 가지로는 나무가 되지 못하고 하나의 나무로는 숲이 되지 못한다'는 옛말처럼, 모두 함께 거들어 우리 손으로 지속가능한 문화를 만들겠다고 당당히 말하는 선거 국면을 맞이하고 싶다.

/손경년 김해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