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작 전 스크린 앞에 나와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김주영 국회의원. 2021.11.23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언제 떠나실 겁니까?"
"지금 떠나는 중입니다."
그만두게 하려는 의도로 격오지 하청업체에 파견된 박정은 대리(유다인 분)는 거친 현장 사람들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한다. 하지만 박 대리는 끈질기게 자신의 일자리를 지켜내고 살아낸다.
평일이던 지난 23일 저녁 김포시 풍무동CGV에서 김포국제청소년영화제 GIYFF커뮤니티시네마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상영회가 열렸다. 노동권과 인권, 사회부조리 등을 녹여낸 이 작품을 보기 위해 김주영 국회의원과 신명순 김포시의회 의장, 전현직 시·도의원 등이 객석에 자리했다.
김포국제청소년영화제 커뮤니티시네마 프로그램 이태겸 감독작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상영 하청 파견된 원청 노동자, 비참한 근무여건 묘사 "사회 점점 양극화...함께 사는 세상 만들어가야"
올해 초 개봉해 국내외 영화제에서 호평이 쏟아진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들어가려는 자와 막아내려는 자의 충돌이 큰 줄기다. 본사 복도에서 벽을 보고 근무하던 박 대리는 송전탑을 오르내려야 하는 하청에 파견돼서도 그들만의 영역에 들어가지 못하고 큰 벽과 마주한다. 그러나 인건비 여력이 없는 기존의 하청 노동자들 입장에서 그 벽은 생존이 걸린 최후의 방어벽이다.
영화에는 원청과 하청의 불공정한 관계, 법률을 악용해 노동자를 탄압하는 기업의 행태, 뻔히 예견되는 중대재해 등 노동환경 전반에 깔린 구조적 문제를 곳곳에 심어놓았으나 노골적으로 파고들진 않는다. 무거운 실화를 기반으로 했음에도 탄탄한 스토리로 흡입을 이끌면서 자연스럽게 울림을 안긴다.
어렵게 공부해 들어가 밥 굶어가며 또 코피 흘려가며 일했던 회사는 박 대리의 목을 빠르게 죄어온다. 영화 중간 "합법적인 절차를 만들어서 해고를 진행할 수 있다"는 노동상담가의 우려는 극장 바깥의 불특정 다수를 향한다. 이날 정치인들이 극장에 찾아온 이유는 이 같은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였다.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스틸컷. 극중 유일하게 손을 내미는 막내직원(오정세 분)은 박정은 대리가 하청업체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태시켜야 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2021.11.18 /영화사 진진 제공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이태겸 감독과 김주영 의원이 관객들과 대화에 나섰다. 김 의원은 한국전력 공채로 입사해 전국전력노조위원장, 전국공공산업노조위원장, 한국노총위원장을 역임하며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인권을 위해 일생을 투신한 인물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도 공공기관의 비상임이사에 근로자 대표가 추천한 사람을 포함시키는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발의를 비롯해 공공부문 표준계약서 도입, 산재노동자의 날 법정기념일 제정, 산업재해조사표 허점 보완 등 노동자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어떤 일이든지 그 일을 통해 가족의 삶을 돌보지 않느냐
무대에 나온 김주영 의원은 "(영화를 보고)마음이 답답했다"고 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양극단화 되어가고 함께 사는 사회가 되는 게 점점 멀어지고 있는데 노동운동을 하며 중요한 가치로 여긴 게 '함께 사는 세상'이었다"며 "가정에서도 아내와 남편 간 입장, 자식과 부모 간 입장이 달라서 이해하고 물러서지 않으면 협의점을 찾을 수 없듯이 노사정이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하지 않으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객석의 청소년들에게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어떤 일이든지 그 일을 통해 가족의 삶을 돌보지 않느냐"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분야에서 최고가 되길 바란다. 다만 무조건 최고가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일에 몰두하면서 삶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조언해 박수를 받았다.
김주영 의원은 상영회 며칠 후 경인일보와의 통화에서 "노동을 통해 먹고사는 문제는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노동은 사회에서 산소와 같은 구성요소라 할 수 있다"며 "우리 모두 기본적으로 노동자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그러한 노동자들이 억울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