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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 말로가 좋을 리 없다. 구 소련이 개혁·개방으로 민주화 바람이 불자 소련 전역의 레닌 동상들이 가장 먼저 쓰러졌다. 박정희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며 쿠데타의 정당성을 강변했지만, 먼 훗날 젊은 진중권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고 답했다. 산업화 시대의 추억을 공유했던 세대가 퇴장하면서 박정희 격하도 선명해지고 있다.

지난 27일 전두환 전 대통령 5일장이 끝났다. 그의 죽음이 몰고 온 소동의 크기에 비하면 한줌 재가 되어 버린 유해의 무게는 너무 가벼웠을 테다. 광주 5월단체들은 5·18 사죄 없는 그의 죽음마저 죄로 규정했다. 광주의 억울함과 분노에 공감하는 여론이 지배적이었지만, 신군부 인사들과 극우 보수 유튜버들은 전 전 대통령이 억울하다고 반발했다.

언론들은 '전두환', '전두환씨', '전두환 전 대통령' 등 다른 호칭으로 그의 죽음을 평가했고, 청와대도 여론을 따라 호칭을 변경했다. 망월동 묘역 입구에서 웃으며 전두환 표석을 밟았던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역사왜곡처벌법' 제정을 공약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빈소 조문 의사를 밝혔다가 두 시간 뒤에 취소했다. 이 후보의 분노는 선을 넘었고, 윤 후보의 변덕은 여론의 감정선에 못 미쳤다.

모든 죽음이 숙연한 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공정은 생전의 영욕을 덧없게 만든다. 톨스토이는 죽음이 확실한 만큼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전 전 대통령은 생전에 쿠데타와 5·18의 매듭을 풀지 못했다. 그 탓에 그의 장례는 난장판이 됐고, 그가 남긴 유산은 남은 자들의 다툼과 반목 뿐이다.

전 전 대통령 유해는 생전의 연희동 자택에 머물고 있다. 한달 쯤 앞서 작고한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유해도 경기도 파주시에 소재한 검단사에 임시로 안치 중이다. 노 전 대통령은 파주 통일동산 인근에, 전 전 대통령은 전방 고지를 묘역으로 희망한다는데 관련 부처는 난색을 표한다. 내란죄인으로 국립묘지 안장이 힘들어, 묘역 조차 정하기 힘든 굴욕적인 죽음이다.

큰 정치 하겠다는 사람들이라면 방황하는 노·전 두 전 대통령의 사후 소란을 교훈으로 삼을 만하다. 안식처를 찾을 수 없는 죽음이라면 생전의 권력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