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冊)은 상형문자다. 대나무를 길게 쪼개 엮은 모양을 따서 만든 글자인 것이다. 이를 죽간(竹簡)이라고 했으며, 간독(簡牘)이라고도 했다. 청사(靑史)에 길이 남는다는 말은 귀중한 죽간에 기록으로 남겨야 할 만큼 큰 공적이나 업적을 쌓은 인물에 대한 찬사로 책은 이처럼 귀중한 정신문화의 보고였던 것이다. 책이란 고 천혜봉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문자를 수단으로 표현한 지적 소산이 담긴 물리적 형태"로 이를 연구하는 분야를 서지학, 문헌학이라고 한다. 책을 파는 서점을 예전에는 서사(書肆), 책방(冊房)이라 했고 책을 대여해주는 도서대여점을 세책가(貰冊家)라 했다.
우리는 가난했어도 책을 사랑하는 민족이었다.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를 침공한 프랑스 병사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놀라게 만들었던 것도 바로 책이었다. 강화도에 상륙하여 약탈을 자행했는데,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초가집에서도 집집마다 책을 가지고 있어 놀랐다는 것이다. 19세기까지도 유럽에서 책은 귀물(貴物)이었고, 부의 표상이자 지식의 상징이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덕택에 도서 생산량과 권수가 크게 늘어났어도 유럽인들의 태반이 문맹이었던 데다가 책값도 매우 비싸 보통의 평민들로서 도서 구입과 독서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것이다. '우주전쟁', '타임머신', '투명인간' 등의 걸작을 남긴 H. G. 웰스도 요양차 어머니가 가정부로 일했던 귀족에게 의탁해 살면서 그 집안의 책을 모조리 탐독하고 나서 작가로서의 역량을 갖출 수 있게 됐다.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최소한 해당 분야의 서적 1천권 이상은 읽어야 기본 역량을 갖출 수 있다고 본다. 요즘은 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좋은 책이 넘쳐나도 책을 읽지 않거나, 책 읽을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회적 여건도 문제다. 유튜브·OTT·포털만을 가지고는 고도의 지적 능력과 사고의 힘, 언어능력을 키우는데 한계가 있다. 동네서점들이 사라져 가고 중·대형서점들도 경영난에 잇따라 폐업하고 있다. 책을 읽지도 사지도 않아서이다. 세계에 맹위를 떨치는 한류 문화를 자랑하지 말자. 지금 한류 문화의 본질은 대중문화다. 고급문화에 대한 역량도 갖춰야 한다. 델타 변이에 오미크론까지 나오는 지금 책으로 정신의 면역력도 키우고 마음방역에도 힘쓰자.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