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조 유방은 창업에 성공하자 대장군 한신을 처단한다. 자신의 권력과 맞먹을 정도로 한신의 안하무인이 선을 넘자 신하들의 손을 빌려 살해한 것이다. 명 태조 주원장도 왕조를 세운 뒤 수많은 권신들과 일가족을 숙청했다. 조선 태종도 자신의 즉위를 지원한 처가 일족을 멸문시킨데 이어, 아들인 세종의 외척들도 숙청했다. 자신은 물론 자식의 왕권에 걸림돌이 될 권력들을 소멸시킨 것이다.
권력은 나눌 수 없어 불행을 초래한다. 사마천이 '사기'에 남긴 "토사구팽(兎死狗烹) 조진궁장(鳥盡弓藏)"은 권력의 생리이자 법칙이다. 토끼 사냥을 마친 사냥개는 솥에 들어가고, 새를 떨어뜨린 활은 창고에 방치된다. 토사구팽의 원칙을 거스르면 최고 권력이 화를 입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문고리 3인방과 최서원(최순실)의 비공식 권력에 갇힌 바람에 권력을 잃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과 윤석열을 어정쩡하게 관리한 탓에 광화문과 서초동을 촛불로 밝혔다. 토사구팽에 실패한 권력의 누수는 나라의 혼란으로 이어진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29일 페이스북에 "그렇다면 여기까지"라는 글을 남기고 당무를 내팽개친 채 잠적했다.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둔 제1야당 대표이자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의 당무 거부는 전례 없는 일이다.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자, 대선 정국에 미칠 영향을 놓고 평론가들은 갑론을박 중이다.
이 대표의 돌발 행동의 원인은 윤석열 후보와의 갈등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후보가 자신이 공개적으로 반대한 이수정 교수를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한 것도 모자라, 윤 후보 측근들은 후보 일정마저 자신을 패싱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갈등의 원인은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영입 과정의 앙금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갈등의 원인이 무엇이든 이 대표의 행보는 무책임하다. 대선을 앞둔 제1야당의 대표가 페이스북 문장 하나 남긴 채 잠적한다면 정치인의 기본을 의심받을 행동이다. 국민의힘 내홍이 대선 승리 이후의 토사구팽을 염두에 둔 권력 다툼이라면 어처구니없다. 밥이 익기도 전에 수저 들고 덤비는 형국이고, 자기 밥그릇 채울 순서가 안 되면 밥통을 박살 낼 기세이니 말이다. 정당 사상 초유의 30대 야당 대표의 몽니가 과거의 구태를 닮았으니 안타깝다. 윤석열의 인격과 정치력이 도마에 올랐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