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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대한민국이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세계 '톱 텐'국가에 진입했다고 했다. 국민소득 3만2천 달러, 경제규모 세계 10위, 안보분야에서도 세계 7위의 군사 강국, 과학·한류·복지 등에서도 결코 글로벌 스탠더드에 뒤지지 않는다. 아직도 부문에 따라 갈 길이 멀지만 선진국에 진입했거나 문턱에 있는 대한민국의 위상은 괄목할만하다.

그러나 저출산, 심화되는 부동산과 자산의 불평등, 사회적 양극화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의 심화, 노동과 자본의 대립, 세대와 젠더 문제 등에 기인하는 구성원 간의 원심력 증가 등이 선진국 시민이라는 사실과 괴리를 느끼게 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는 한 세계 10위권의 위상을 지속하기 어렵다. 결국 정치가 사회 각 부문의 갈등과 대립을 조정해 나가지 않으면 국운 상승기의 대한민국의 앞날은 장담할 수 없다. 


李·尹, 승자독식 대통령 권력 분산엔 함구
네거티브·정치공학 난무 모두 패자될 수도


대선이 진행 중이지만 지금의 정치구조를 개혁하자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이재명, 윤석열 후보는 약속이나 한 듯이 현재의 승자독식 대통령 권력에 대해서 함구하고 있다. 지금의 대통령제는 장기집권과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고 직선제를 관철시킨 절차적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1987년 13대 대선 이후 7번의 대통령 권력이 있었고 3번의 정권교체가 있었지만 대통령의 퇴임 후 불행이 구조화되는 형국이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현행 대통령제가 갖는 구조적 모순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과거 대선에서는 87체제의 수명이 다했다는 자각과 함께 헌법 개정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이 화두가 되곤 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정당체제를 개혁하고 과도한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킴으로써 양대 진영의 극한 대결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당위마저 끼어들 틈이 없다.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과 고발사주 의혹 사건은 핵심 인물에 대한 수사 없이 마무리될 것 같다. 이재명 후보가 특검 수용 의사를 밝혔으나 여야 모두 각자의 셈법에 따라 특검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다.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채 선거 승패가 결정된다고 사건은 묻히지 않는다.

상호비방과 비난, 음해와 가짜뉴스, 검증되지 않은 네거티브와 마타도어가 선거를 지배하고 오로지 정치공학만 난무하는 지금의 대선은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모두가 패자가 될 수 있는 위험한 게임이다.

국회의원 특권구조 등 바꾸자는 시늉이라도
제3지대 후보들 주장 광야의 외침되지 않게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문제는 정치'다. 승자독식의 정치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경제 역시 승자독식과 패자전몰의 구조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표면적인 세계 톱 텐의 나라에서 낙오한 자들의 이해가 반영되는 경제가 아니면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보할 수 없듯이 정치 역시 단순다수제와 소선거구, 결선투표 없는 무한경쟁의 현행 대통령제는 갈등과 반목을 구조적으로 양산하고 확대 강화한다.
 

선거정치가 증오와 적대를 재생산하고 갈등을 확인하는 과정이 된다면 이러한 선거는 단순히 권력자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집단의 이익쟁취를 위한 이벤트와 다름없다. 상대를 거꾸러뜨리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는 치킨게임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현행 대통령제는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입법부의 구성원이 내각에 편입되어 권력에 참여하는 기형적 구조, 양당제의 명분과 적대적 공생으로 기득권 향유에 익숙한 퇴행과 구태의 정치, 국회의원이 권력에 편승해서 청와대, 공기업, 지방자치단체 등을 전전하면서 이권 카르텔에 편입되는 정치를 정당화하고 있다. 대통령 후보들은 허울뿐인 국무총리 제도, 시민의 위임을 받은 대리인이 아니라 신분 상승의 도구로 전락한 국회의원의 특권 구조 등을 바꾸자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현행 양당제의 승자독식 대통령제를 교체해야 한다. 제3지대의 안철수, 심상정, 김동연 후보와 최근 출마를 선언한 손학규 전 대표의 주장이 광야에서 홀로 외치는 소리가 되지 않도록 정치개혁 담론에 주목해야 한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