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대설이었다. 대설은 입춘을 기준으로 보면 24절기 중 스무 번째다. 대략 12월7일 전후의 시기로 큰 눈이 내리고 겨울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때가 바로 대설이다. 절기(節氣)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1년을 24개 구간으로 나눈 것으로 계절을 구분 짓기 위해 고안된 역법(曆法)이다. 이렇게 1년은 24절기, 72후로 나눠지며 사주명리학과 농사에서는 양력이나 음력이 아닌 절기력(節氣曆)을 매우 중시한다.
'절'은 보름 단위로 나눠지며, '후(候)'는 일 년을 닷새를 주기로 나눈 계절의 최소 단위로서 태양의 위치와 계절의 미묘한 변화까지 잡아낸 것이 특징이다. 우리가 아는 설과 추석 등의 명절은 절기와는 상관없는 세시풍속이다. 절기력에서 매우 중요한 때는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 밤낮의 길이가 같은 춘분과 추분, 그리고 동지다. 특히 동지는 밤이 가장 긴 날로 이때를 기점으로 낮의 길이가 노루 꼬리만큼 길어진다고 했으며, 고대사회에서는 동지를 한 해의 시작 또는 아세(亞歲)라 하여 설 명절처럼 귀한 날로 삼아 기념하기도 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상가 인근의 화단에 하얀 국화가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겨울에 국화꽃을 다 보다니 짧은 경탄과 함께 일순간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생명의 신비와 끈덕짐이 놀랍게 반가웠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쩌자고 이 추운 겨울에 피었을까하는 안타까움의 감정이 올라왔다. 생명의 생명력이란 얼마나 놀라운가, 엄동설한에 결국 시들고 말 국화의 미래에 문득 서글퍼졌으며 동시에 대설에도 꽃을 피우는 지구의 환경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기실 겨울의 초입인 대설에 하얀 국화가 핀다는 것은 경이(驚異)로우면서도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 환경과 기후는 지금 이렇게 달라지고 있다. 이런 변화들이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지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대설에 핀 국화꽃을 축복으로 해석하고 싶다. 오미크론에, 요소수 사태에, 물가폭등에, 이전투구의 대선판에, 대출제한과 인플레이션에 지친 고단한 우리의 삶을 위로해주기 위해 큰 눈(大雪) 대신에 내려 준 자연의 위로라고. 나라가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나라를 걱정하는 시대를 넘어 국화가 제철에 꽃을 피우는 진짜 국민의 계절, 시민의 나라, 민중의 시대가 활짝 열렸으면 좋겠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