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라톤은 철학자가 통치하는 '철인 정치'로만 이상국가 실현이 가능하다고 봤다. 그런데 통치 계급인 철학자 육성 과정이 장난이 아니다. 20세 청년들 중에서 선발된 인재들을 30년의 커리큘럼으로 거르고 걸러 소수의 50대 통치자들을 남긴다니 말이다. 정치 권력의 본질과 현실에 비추어보면 너무 이상적이니 철인 정치는 정치 철학에 그쳤고,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실현된 적이 없다. 명상록을 남긴 로마의 철학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조차 후계자인 자기 아들을 망나니로 키웠으니, 철인 정치의 실현은 헛된 꿈에 가깝다.
최근 지구촌 곳곳에서 10대들의 정치 참여 요구가 거세다. 플라톤이 들었다면 기절할 일이다.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투표 연령을 18세에서 16세로 낮추는 문제가 정치적 쟁점이 됐다. 스위스 취리히 주의회가 16세 투표법안을 채택해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다. 유럽 청소년들의 투표권 요구 배경에는 청소년 기후행동 시위를 주도한 그레타 툰베리가 있다. 툰베리는 탄소를 쏟아내는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의 미래를 망친다며, 청소년의 정치 참여에 불을 댕겼다.
16세 투표를 놓고 유럽 사회의 찬반은 첨예하다. 논점은 16세가 투표할 만큼 성숙한 연령인지 여부이다. 반대 측은 법적 성인 연령이 18세인 점을 앞세운다. 16세는 성인으로 인증하기에 미숙한 연령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찬성 측은 '어른들은 성숙하냐'며 16세의 정치 참여권을 옹호한다. 정치 혐오를 초래한 기성세대가 연령을 기준으로 정치적 성숙과 미숙을 판단할 수 없다는 반론에 할 말이 없다.
대선 국면에서 고3 논란이 불거졌다. 민주당은 대선 광주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에 18세 여고생을 세웠고,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선 18세 남고생 당원이 찬조 연설을 했다. 21대 총선부터 투표권을 행사한 18세를 의식한 선거 캠페인이었다. 자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두 사람의 연설은 청소년답게 맑고 신선해 반향이 컸다.
그런데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우리 고3이 민주당 고3보다 우월할 것"이라고 자랑해 사달이 났다. 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고3도 갈라치느냐'는 요지로 반박하며 설전으로 비화됐다. 16세에 못 미치는 미숙하고 유치한 설전이다. 우리 16세들도 어른 정치의 미성숙을 규탄하며 투표권을 요구하고 나설 날이 머지않았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