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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일제시대 경기도청, 대성동 국기 게양대. /그래픽=박성현기자

높게 솟은 첨탑, 달콤한 향기의 이름 모를 열대 과일, 오밀조밀 상점들이 모인 낡은 골목길…. 한 해 동안 수고한 나에게 주는 선물, '낯선 풍경'이다.

여행에서 만나는 낯선 풍경은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쉼표다. 하지만 하늘길은 닫혔고, 국내에도 숨겨진 보석은 찾아보기 힘든 요즘이다.

대신 익숙한 공간을 낯선 풍경으로 바꿔주는 책이 있다. 대한민국에 있지만 다소 다른 시스템을 갖춘 파주 대성동 마을과 지금은 잊힌 일제강점기 서울의 모습을 담은 책이 나왔다.

■ 대성동:DMZ의 숨겨진 마을┃임종업 지음. 소동 펴냄. 288쪽. 2만원.

유엔사 관할 납세·국방의무 없는 지역
국내외 자료 망라, 주민들 삶 들여다봐


대성동
비무장지대(DMZ)안에는 두개의 민간인 마을이 있다. 북한에는 평화의 마을, 남한에는 대성동마을이다. 남북관계에 큰 이슈가 생길 때마다 소환되지만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던 그곳, 대성동마을을 다양한 각도에서 다루고 있다.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를 주소로 47세대가 거주하는 대성동마을은 겉에서 보면 여느 농촌 마을이지만, 납세의 의무나 국방의 의무가 없는 독특한 곳이다. 대신 가게나 병원도 없고 통금시간이 있으며 농사를 지으러 갈 때는 민정중대가 따라 붙는 낯선 공간이다.

특히 1969년까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었다는 사실과 현재에도 유엔사 관할로, 주민들이 통제받는다는 사실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농촌의 풍경을 새로 보게 한다.

지역 주민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마을과 관련된 잊힌 인물을 조명하고 있다. 국내외 자료를 망라해 직접 가서는 볼 수 없는 대성동마을의 모습까지 담았다.

■ 경성이여, 안녕┃가지야마 도시유키 지음. 김영식 옮김. 392쪽 1만5천원.

'속죄의 뜻' 담아 작품 활동 펼친 저자
경기도청 등 1940년대 경성 모습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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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서울에서 태어난 일본인이 그리는 당시의 서울. 시대극이 담지 못하는 생생한 일제 강점기의 풍경이 담겼다.

저자는 1940년 8월 유달리 더운 서울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조선신궁이 있는 남산의 정상에서 군인들에게 혹사를 당하고 있었다", "서소문의 관사에서 배재중학 언덕길을 내려가 법원 옆을 지나면 태평통(태평로)이 나온다. 왼쪽에 덕수궁, 오른쪽에 경성부청이 보이고, 전찻길을 따라 계속 북쪽으로 걸어가면 흰 벽의 조선총독부 건물이 우뚝 솟아 있다. 그 바로 앞 우측에 있는 벽돌 건물이 경기도청이었다."

이번에 소개된 도시유키의 9편의 소설 가운데 '족보'에 묘사된 서울이다.

도시유키는 일본문학이나 한국사 전공자, 독립운동 연구자에게는 친숙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그는 '어릴 때 몰랐던 사실을 재일교포를 통해 듣게 돼 과거의 잘못을 속죄하는 뜻도 곁들여 '족보'와 '이조잔영'을 썼고 앞으로도 계속 쓸 생각'이라고 밝힐 만큼 원폭과 이민, 조선을 주제로 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1975년 별세할 때까지 한일 문화교류에 힘썼던 그가 기록한 서울의 낯선 풍경과 조선의 문화와 전통 등을 엿볼 수 있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