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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올해도 감염병과 함께한 세월이 속절없이 저물어간다. 작년부터 한 시대의 키워드로 군림하기 시작한 코로나19, 확진, 방역, 마스크, 백신, 비대면 등은 이제 한시적 응급실이 아니라 상시적 거실까지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확진자나 사망자 숫자는 그 어떤 생활지수, 예컨대 주식, 물가, 이자율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상적 관심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인류는 이제 새로운 변이형과 다시 싸워야 할 기로에 서 있다. 보이지 않는 것들과의 한판 승부가 끝없이 이어지면서 어쩌면 이 긴 터널에서 오랫동안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도 생겨날 법하다. 이처럼 어둑한 감염병 시대에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코로나 이후 생명·자연·농경 존중
야생동식물 서식지 파괴하지 말고


서양사의 한쪽을 보면 우리는 감염병 사태가 소강상태에 이르면 어김없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해석 조류가 등장하곤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양사에 새로운 근대의 물결로 밀려온 르네상스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그 기원을 둔다. 이 작품은 페스트가 한창이던 어느 아침 남녀 열 명이 모여 나눈 이야기 모음이다. 이들은 어이없이 감염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자신들도 그러한 죽음의 공포를 한없이 느끼면서, 지상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종교적 엄숙주의가 지배하던 나날에서 벗어나 인간 이성에 바탕을 둔 현세적 삶의 중요성을 예감하고 갈파한 '중세 이후'의 선언이었던 셈이다. 르네상스의 제1원리인 인간 발견 모티프가 페스트라는 존재조건으로부터 시작된 아이러니가 그 안에 들어 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때 유행했던 이른바 스페인독감 이후 등장한 아방가르드는 오랫동안 근대 사회를 추동했던 인간 이성의 몰락을 선언하고 새로운 인간 이해의 비전을 제시한 운동이었다. 삶과 예술의 새로운 창조와 수용을 통해 인간 이성이 가한 기형적 폭력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실험적으로 끌어낸 것이다. 이성이 열어젖힌 근대 사회가 실은 전쟁과 감염병을 초래한 병원(病源)이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아이러니로 확인시켜준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로부터 정확하게 백년이 지난 '후기 근대'에 다시 혹독한 감염병 시대를 가파르게 통과하고 있다. 이때 우리는 코로나 이후 시대는 과연 어떤 아이러니를 동반하면서 문학적 형상이 펼쳐지게 될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의 운명은 생로병사라는 과정적 표현에 압축되어 있다. 태어나 나이 들어 병들고 사라진다는 것이 불가피한 인간의 보편적 존재론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우리를 한없이 소모시키고 죽음에 접근시키면서도 한편으로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물리적 사건이 질병일 것이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육체적 과정으로 찾아오는 질병과는 달리 감염병의 낯선 침입은 전혀 새로운 문학적 형상을 한국문학에 요청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한국문학이 감염병을 형상화해가는 과정은 크나큰 역사적 의미를 파생시키면서 그동안 근대문학이 주목해온 '질병의 은유'를 부수어갈 것이다. 이때 우리는 한국문학이 증언록과 묵시록의 속성을 견고하게 결속하면서, 근본주의적인 생태적 사유를 그 기저에 깔면서, 그동안 속도와 성장에 취해 벌려놓은 스스로의 과잉을 반성하면서, 자발적으로 가난해지면서, 작은 공동체를 중심으로 연대하는 태도를 가짐으로써 이러한 과제를 수행해가리라 생각해 본다.

하늘·대지·강물·바다를 '환경' 아닌
존재를 품은 '근원'으로 발견해가는
사유와 실천의 시대로 가기를 고대


다시 한 번 우리는 1990년대 한때 유행 흐름을 띠었던 생태적 문학이 새로운 인류사적 과제로 재설정되면서 깊은 성찰의 계기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예감해본다. 그 길만이 지금 시대를 넘어서는 최선의 출구 전략이 되어줄 것이다. '코로나 이후' 시대는 생명과 자연과 농경을 존중하고, 인간 편의를 위해 야생 동식물 서식지를 죽이지 말고, 하늘과 대지와 강물과 바다를 '환경'이 아닌 존재자들을 품어 안은 '근원'으로 발견해 가는 사유와 실천의 시대로 나아가기를 고대해본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이 낯선 감염병의 시대를, 생명과 자연과 농경에 대해 저지른 인간 폭력이 징벌을 받았던 시대로, 그로 인해 역설적인 인간 이해가 가능했던 아이러니의 시대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