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주요 정책과 액션 플랜은 집권 여당의 몫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당선되면 정책을 설계한 사람보다 실시계획의 이름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공무원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국민이 요구한 '귤'이 여의도를 지나 청와대를 거쳐 기획재정부를 통과할 때면 '탱자'가 되어 있다. 부동산 정책도 같은 코스를 수십 번 돌았다. 서울에 획기적 주택공급 정책은 없었다. 재개발을 앞둔 담벼락을 치장하는 도시재생이 자리를 차지했다. 공급 확대보다 지역 균형을 외치면서 지방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똑똑한 집 한 채를 원하는 돈은 강남으로 서울로 몰려들었다. 정부의 지역 균형이나 주요 기관의 이전정책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왜 서울로 몰려드는가를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소멸하는 지방에 투자할 국민은 거의 없다.
형식적 법치주의 기대어 남용되는
조세부과는 비례의 원칙에 어긋나
부동산정책 수요·공급으로 풀어야
그런데도 공급과 수요에 의해 좌우되는 주택의 문제를 증세의 칼날에 내맡겼다. 역대 정부 중에 조세의 칼날을 이렇게 사용한 적이 있었던가. 취득세, 양도세, 종부세, 지방세, 그와 연계된 의료보험 등. 징벌 차원의 세금부과는 난데없이 부동산의 증여를 불러왔다. 원래 주택은 투기의 대상 이전에 가족을 형성하고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삶의 바탕이다. 일부 국가의 헌법이 주거권을 보장하는 이유다. 보유기간, 가격, 세대, 지역, 가족관계 등 투기적 요소가 아닌 것들을 정책으로 시행령에 우선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도 아파트의 가격이 오를 때마다 세금을 많이 부과해도 된다는 증오의 논리로 증세를 남발하였다.
당장 공급이 부족한 현실을 고려하여 한시적으로 양도세나 대출 완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청와대와 부총리 등은 거부하고 있다. 결사반대의 자세를 보노라면 국민주권이 어디에 있는지 헷갈린다. 헌법이 정한 조세법률주의의 진정한 의미는 국민의 의사에 맞게 국회가 법률을 제정하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집행기관인 정부가 국회의 논의를 막아서고 있다. 정부의 행정이 이토록 고압적인 것은 공정력(公定力)에 그 기반이 있다. 공정력이란 조세 부과와 같은 처분이 아무리 위법하다고 하여도 그 흠이 중대하고 명백하여 당연무효로 보아야 할 사유가 아니면 누구도 그 흠을 이유로 효과를 부정하지 못한다는 법이론이다.
만약 부동산에 부과된 세금에 대해 따지려면 납부를 한 후 이의제기, 조세 심판, 그리고 취소소송이라는 고된 길을 거쳐야 한다. 과세처분의 공정력 때문이다. 공정력은 국민이 아니라 국가 주도의 성과를 내세운 이론이다. 공정력이 지금 시대와 과연 올바른가. 그것이 남용되어 수많은 국민이 고생을 반복한다면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세무사들도 헷갈리는 과세제도로 국민을 옥죄면서 억울하면 법원에 호소하라는 식의 행정을 도대체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형식적 법치주의와 공정력에 기대어 남용되는 조세 부과는 비례의 원칙과 명확성의 원칙, 그리고 법률유보의 원칙에 어긋난다.
세금 일단 납부하고 억울하면 호소
권위주의적 조세 행정은 개편돼야
부동산 정책은 과세가 아니라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원리와 행정계획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부과된 세금을 일단 납부하고, 억울하면 호소하라는 권위주의적 조세 행정은 개편되어야 한다. 과세도 일방적인 공권력의 우위가 아니라 국민과 대등한 관계가 되도록 제도를 재정립하는 것이 행정의 민주화이다. 과세와 관련한 공정력의 남용을 막는 것. 반복되는 과중한 조세 부과가 국민의 삶을 뒤흔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 시대적 과제이다. 왜 부동산 정책에 국민이 분노하고, 대선의 키워드가 되었는가를 직시할 때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