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극단 아토의 연극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과 만났다. 스페인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유작인 희곡을 극단 아토가 자체 레퍼토리인 '명작시리즈'로 재해석해 올렸다. 공연은 10~12일 인천 남동소래아트홀에서 진행됐다.
극단 아토의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은 어머니와 4명의 딸, 바깥소식을 전해주는 하인 등이 사는 집과 그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작품 속 어머니인 베르나르다는 남편의 장례식 이후 자신의 네 딸들에게 외부와의 접촉을 금하고, 심지어 벽돌을 쌓아 창문을 막은 채 3년 상을 치를 것을 강요한다. 딸들은 어머니와 갈등을 빚는다.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줄거리다.
베르나르다 알바 역은 배우 지미리가, 하녀 폰시아 역은 임송현이 맡았다. 네 명의 딸은 첫째 딸 앙구스띠아스를 윤원기, 둘째 딸 아멜리아를 이희준, 셋째 마르띠리오를 김경용, 넷째 아델라를 강원철이 각각 소화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주요 배역인 딸과 배우의 성(性)을 일치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성 배역을 남성 배우가 소화했는데, 그로 인해 빚어지는 어색함, 불편함, 혼란스러움이 객석에 앉은 관객 입장에서 불쾌하지 않았고, 오히려 흥미로웠다.
남성 배우는 여성을 흉내 내려 하지 않고 자신의 톤으로 대사를 소화해냈다. 실체는 '남성'인 배우의 입을 통해 여성들의 억눌린, 억압받는 현실이 대사로 전달되는 순간이 만들어내는 '아이러니'는 쉽게 잊히지 않는 경험이었다.
또 베르나르다는 남성보다 더 권위적이고 폭력적이면서, 기존의 관습을 중요하게 여기는 여성이다. 여성으로서 여성을 억압하는 가해자로서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충실한 베르나르다의 모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시사하고 있는 바가 컸다.
극단 아토의 연극 작품을 소극장 무대가 아닌 모처럼 중·대극장 규모의 무대에서 만났다는 점도 반가운 대목이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