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는 정치의 꽃인 선거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2020 미국 대통령 선거였다. 재선을 노리던 도널드 트럼프가 선거 한 달을 남기고 덜컥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이다. 트럼프는 처음부터 코로나19를 독감 수준으로 여겨 봉쇄,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등 방역의 기초를 무시했다. 자랑스럽게 마스크를 벗고 다니고, 질문하는 기자에겐 마스크를 벗으라고 요구했다.
대통령이 이 모양이니 지지자들도 노마스크로 지지를 표현했고, 펜실베이니아주의 셧다운을 위헌이라고 판결한 연방판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한참 대선 유세에 전념해야 할 10월1일 트럼프와 영부인 멜라니아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 방역을 거부한 그에게 조롱이 쏟아졌고, 마스크를 쓴 조 바이든의 지지율이 치솟았다. 사흘 만에 퇴원을 강행한 트럼프가 백악관 취재진 앞에서 마스크를 벗었을 때 미국은 경악했다. 결국 트럼프는 세계 제1의 코로나19 사망자를 남긴 채 재선에 실패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우리도 두 번의 선거를 치렀다. 2020년 4·15 총선을 앞두고 마스크 대란과 신천지교회발 대구 1차 대유행이 터졌다. 정치권은 여당에 불리한 선거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여당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코로나 위기가 오히려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민심을 결속시켰다는 사후 분석이 그럴듯했다. 하지만 1년 뒤 치러진 4·7 재·보선에선 국민의힘이 서울·부산시장 선거를 압도적으로 이겼다. 코로나19 보다는 부동산 등 정부 실정이 여론의 심판대에 오른 결과였다.
대선(2022년 3월9일)을 앞두고 최악의 코로나19 대유행이 한창이다. 7천명대 1일 확진자 수는 1만명 진입을 앞두고 있고, 위드 코로나 개시 한 달여 동안 사망자가 2년간 전체 사망자의 3분의1에 달한다. 대통령은 과거(사회적 거리두기)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지만, 방역 당국은 과거 회귀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병상도 의료인력도 부족하다. 초등학생도 준비 없는 위드 코로나를 비판하고 나섰다. 매일 인파 속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대선 후보들은 지켜보기에 아슬아슬하다.
사상 최대 코로나19 대유행이 어떤 변수로 작용할 지, 또 어떤 변수를 발생시킬지 정치권의 셈법이 복잡할 듯싶다. 다만 정치를 방역에 개입시켜선 안 된다는 원칙만은 지켜주길 바란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