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 교수신문에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가 실린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노정을 네 자로 함축해 정의한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현상을 꿰뚫는 학자들의 혜안이 명징하다.
2021년 사자성어는 '묘서동처(猫鼠同處)'다.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 도둑 잡을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됐다'는 뜻이다. 교수신문에 따르면 전국 각 대학교수 880명이 6개 사자성어를 대상으로 투표한 결과 1천760표(중복 포함) 가운데 514표(29.2%)를 얻었다.
묘서동처는 중국 당나라 역사를 서술한 '구당서'에 '고양이와 쥐가 같은 젖을 빤다'는 '묘서동유'(猫鼠同乳)라는 말과 함께 나온다. 곡식을 훔쳐 먹는 쥐와 이를 지켜야 할 고양이가 한통속이 된다. 위아래 벼슬아치들이 부정 결탁해 나쁜 짓을 함께 저지르고 이권을 도모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묘서동처를 선택한 이유로는 "권력자들이 한 패가 되어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내년 대선을 걱정하는 의미로도 해석됐다. "누가 덜 썩었는가 경쟁하듯, 리더로 나서는 이들의 도덕성에 의구심이 가득하다"거나 "상대적으로 덜 나쁜 후보를 선택해 국운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라고 걱정들이다.
박근혜 정부 국정논단 사태로 국민들이 촛불시위를 한 2016년 사자성어는 '군주민수(君舟民水)'였다. '임금은 배고 백성은 물이니, 물의 힘으로 배를 띄우나 물이 화가 나 배를 뒤엎는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은 '파사현정(破邪顯正)'.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부수고 사고방식을 바르게 한다'는 뜻으로 불교 삼론종의 중요 논저에 실린 고사성어다. '파사현정' 수년 뒤 외려 '묘서동처'를 개탄하는 세상이 됐다. 대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은 아전인수격 시각으로 상대방에 손가락질을 한다.
올해 사자성어에서 앞순위는 아니나 '유자입정(孺子入井)'이란 말이 눈에 들어온다. 젖먹이가 우물에 빠지려 할 때 이를 본 사람은 누구나 깜짝 놀라며 측은한 마음이 들고, 구하려 든다.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는 누구에게 칭찬받거나 모질다는 소리를 듣기 싫은 게 아닌 양심의 발현이라고 봤다. 길어지는 코로나19 사태에 서민 생활이 말이 아니다. 측은지심의 심정으로 이웃과 정을 나누는 훈훈한 세모(歲暮)이기를 바라본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