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광교중앙공원에는 어린이들을 동화 속으로 초대하는 듯한 숲 놀이터가 있다. 숲속에 놀이터를 만들려는 생각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을까.
■ 시민이 만든 숲속 놀이터
둔덕과 물길 등 지형을 그대로 살린 숲 놀이터엔 상상을 자극하는 놀이기구가 많다.
아이들은 '잭과 콩나무'를 모티브로 만든 그물연결로를 용감하게 헤치고 지나가 10m가 넘는 초대형 '라푼젤 미끄럼틀'을 통해 공주님을 구출한 뒤 '타잔 집라인'을 타고 자유롭게 숲을 날아다닌다.
'햇님 달님 오르기'로 밧줄을 잡고 경사 지면을 오르거나 빗물이 모여 만들어진 수공간 '금도끼 은도끼 연못'에서 생태를 탐험한다.
또 '인디아나 인디언 집'과 '해먹' 등 자연물을 활용한 놀이시설과 '사계절 정원', '다람쥐 피크닉 테이블', '어서 와 숲무대' 등 놀이터 곳곳은 온 가족 누구나 즐거운 공간이다.
일반적 쉼터를 꿈의 공간으로 변화하는 건 2019년 한 주민의 생각에서 시작됐다. 어린이 체험학습장을 조성하자고 주민참여예산사업으로 제안한 것이다. 심의를 통해 2020년 4억3천400만원의 사업비를 배정받았고, 같은 해 11월 개장했다.
■ 11년간 8천건 주민제안 접수 '호응'
이 같은 주민참여예산제는 수원시민이 행정의 정수인 예산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거버넌스 제도다.
수원시 주민참여예산제의 본격적인 시작은 지난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터넷 접수와 같은 소극적 행태에 그쳤던 주민참여예산은 민선 5기 시작과 함께 확산의 길로 방향을 틀었다.
10년간 7278건 제안 접수 1585건 실행 성과
올 예산안 포함 시의회서 최종 승인 앞둬
'동단위 자치계획형 사업' 다수 참여 유도
수원시는 주민참여예산의 세부운영계획을 마련하고 조례를 개정해 적극적인 사업 시행의 근거를 마련했다.
누구나 생활 속 불편함을 해소하거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사업을 제안할 수 있다. 인터넷, 민원실, 찾아가는 제안설명회 등 다양한 창구가 열려있다. 매년 3~5월 접수 집중 기간에는 각 동을 방문해 사업을 독려하기도 한다.
첫해인 2011년 197건 접수에서 2018년엔 1천36건으로 제안 건수가 대폭 늘었다. 지난해까지 10년간 총 7천278건의 주민제안이 접수됐다. 올해도 688건의 제안이 접수됐다.
■ 심의와 평가도 시민이 주체적으로 참여
주민제안 사업의 적절성과 우선순위 평가 심의도 시민이 주도한다. 심의 기준은 5월 말이다.
수원시에선 주민세 재원(개인균등분 주민세 전전년도 결산징수액)과 별도 재원(결산징수액의 20%)을 활용해 연간 48억원 규모로 주민제안 사업을 지원한다. 제도 심의는 주민참여예산 위원회가 주도한다. 180여명이 활동하며 4개 분과별 시 위원회와 4개 구별 지역회의, 청소년위원회 등 다양한 단체와 연계된다.
심사로 우선순위 사업이 선정돼 다음 해 예산안에 포함되면 수원시의회 심의를 거쳐 연말에 최종 결정된다. 지난 10년간 1천585건이 실행됐고, 올해는 127건이 예산안에 포함돼 수원시의회의 최종 승인을 앞두고 있다.
■ 주민 생활을 개선하는 '일등공신'
주민제안 사업은 주민의 삶이 편리해지는 데 일조했다.대표적인 예로 임산부 유축기 대여사업을 꼽을 수 있다. 출산 후 모유 수유를 하는 산모에 꼭 필요한 유축기를 대여해 주는 사업이 주민참여예산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2017년 한 주민이 익명으로 제안한 유축기 대여사업이 접수돼 심의 과정을 거쳐 2018년 4천293만여원의 사업비를 배정받았다. 이후 수원시는 2018년부터 출산 후 1개월 이내의 수유부에게 전동 유축기를 1개월 지원해주는 사업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높은 호응도로 수원시만의 특색있는 출산지원정책이 됐다.
광교중앙공원 내 '상상력 자극' 숲 놀이터
2019년 주민 생각서 출발 작년 11월 개장
서둔동 벌터 어린이공원 미니도서관 눈길
미세먼지 대응 사업도 주민제안이 현실화했다. 지난 2019년 수원시민 8명이 조금씩 다른 미세먼지 관련 사업을 제안했다. 당시 마스크 지원, 미세먼지 흡입식물 보급, 홍보 교육관 설치, 공기질 지키미, 미세먼지 의무교육, 대기오염측정소 설치 등의 주민 제안이 접수됐다.
이를 망라해 사업 구조화했고, 2020년 주민참여예산으로 선정됐다.
지난해에만 1억1천만원이 투입돼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 미세먼지 취약층에 7만2천330장의 마스크가 지원됐고, 수원시 초미세먼지 관리사 4명이 총 266회의 교육을 진행했으며 미세먼지 대응 시민토론회도 열렸다.
■ 계속되는 우리 동네 업그레이드
마을의 실질적인 변화도 이끌고 있다.
권선구 서둔동에 위치한 벌터 어린이공원에는 올해 자그마한 미니도서관이 설치됐다. 집 모양의 3단 진열장 안에 어린이 도서부터 일반 도서까지 수백여권의 책이 있어 누구나 독서할 수 있는 공간이다. 주민참여예산으로 설치된 공간이다.
수원시방범기동순찰대 서둔지대 옆 도로변에 설치된 흙먼지털이기도 주민제안사업이다. 동네를 가장 잘 아는 주민의 제안으로 서호천 산책로 이용 후 흙이나 먼지를 제거하기 위한 편의시설이 설치된 것이다. 이 밖에도 산책로 진입계단 변경과 마을소식지 발간 등을 포함해 서둔동에서는 올해 총 6개의 주민참여예산 사업이 진행됐다.
수원시는 지난해부터 주민자치회 시범동과 연계해 '동 단위 자치계획형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더 많은 주민이 스스로 참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올해는 주민자치회 시범동 8곳에서 제안된 460건의 동 단위 사업이 수원시의회의 최종 예산 심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수원시는 지난 2017년 행정안전부 평가에서 우수, 2018년 최우수, 2020년 우수 자치단체로 잇따라 선정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상균 시 예산재정과장은 "수원시 주민참여예산제가 10주년을 넘긴 만큼 그동안의 발전을 넘어 수원특례시에 걸맞은 위상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주민의 삶에 밀착되고 주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주민참여예산제 운영을 위해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석·김동필기자 phiil@kyeongin.com,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