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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정답을 취소하라는 수험생들이 법원에서 승소했다. 서울행정법원은 15일 "주어진 조건이 모순되게 잘못 제시됐다"는 판결로 문항의 오류를 인정했다. 법원은 17일 예정됐던 선고일을 대입 전형 혼란을 최소화하려 이날로 앞당겼다고 한다. 하지만 문항의 오류가 너무나 명백하다는 판단이 조기 판결의 결정적 배경이지 싶다.

법원 판결로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낯을 들 수 없게 됐다. 평가원은 수험생과 입시 전문가들의 이의제기에도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학업 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의 타당성은 유지된다"며 정답 유지를 고수했다. 문제는 틀렸지만 문제는 타당하고 정답은 있다? 해괴한 논리였다.

집단유전학 석학인 조너선 프리처드 미 스탠퍼드대 석좌교수도 자신의 전공과 관련한 이번 소동이 흥미로웠는지 제자인 아기레 연구원의 풀이를 공유했다. 아기레는 "문제 조건 자체가 모순"이라며 "만약 정답을 고른다면 의도적으로 진실을 피해야 한다"고 했다. 평가원의 국제 망신을 공인한 셈이다. "고등학교 시험에서 이렇게 어려운 문제가 출제된다는 것이 놀랍고 인상적이다." 프리처드 교수의 총평은 뼈 아프다.

수능은 고3 수험생들의 인생 행로를 결정짓는 결정적 관문이다. 조부모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버지의 바짓바람이 자녀 교육 성공의 3대 법칙일 정도로 자녀를 키우는 국민이면 모두 수능 전문가이다. 지난 11월 한국사 1타 강사인 최태성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수능 한국사 19, 20번 문항을 예상해 화제가 될 정도로 한국은 수능 전문가들의 나라이다. 수능 시험이 아무리 어려워져도 1타 강사와 입시학원들의 족집게 강의를 벗어날 수 없다.

평가원의 수능 출제 경향이 정상적인 교과 수업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파격적이고 기상천외한 문제로라도 수험생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워야 하는 대학입시 구조 때문이었을테다. 그래도 이번처럼 명백한 오류를 부인하다 법정에 끌려가 망신을 당한 평가원의 대응은 무책임했다. 법원 판결 직후 원장은 사퇴했지만, 법원이 정답을 판결하는 대입 수능은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됐다. 이런 수능을 계속해야 할지 깊이 고민할 때가 됐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