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어떤가. 아이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원으로 향한다. 선행학습이니 뭐니 하면서 아이들을 짓누르는 또 다른 공부가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뒤처진다 싶으면 당장 "OO이는 이번에 성적이 올랐는데, 너는 뭐하고 있니"라는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쉬는 시간에는 뭘 할까. 스마트폰 삼매경이다. 밖에 나가서 뛰노는 아이들은 드물 것이다.
없는 시간을 어렵게 내서 밖에 나가 놀이를 즐기려 해도, 상대를 구하기가 어렵다. 가까스로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놀 곳을 찾으려 하는데,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웬만한 도시에는 아파트 단지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서 골목길 찾기가 쉽지 않다. 있어도 자동차 세상이다. 집에 왔다가 다시 학교운동장으로 가는 것도 마땅치 않다. 아파트 단지 내 놀이시설도 깔끔하게 꾸며져 있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아이들이 맘 놓고 놀기에는 부담스럽다. 만에 하나 옆 동네 아파트 놀이터에라도 가려면 조심해야 한다.
지난 10월 수도권의 한 아파트 입주민 대표가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다른 동네 어린이들을 기물파손 혐의로 신고해 논란이 일었다. 어린아이들이 졸지에 범죄 혐의자가 됐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까지 법적인 다툼의 대상이 돼버렸다.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어른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아이들은 놀면서, 싸우면서 크는 법'이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동들의 놀이 공간을 추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른 세대로서 반성해본다.
우리 학생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심지어 유치원 때부터 선행학습에 찌들어버린다. 10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대학입시를 위해 매달린다. 목표는 하나. 남들을 제치고 좋은 대학 가는 거다. 대입은 사회 첫발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행사로 자리매김해왔다. 놀이 기회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욱 드물어진다. 놀이 문화를 대입을 가로막는 방해물로 여기는 모양이다.
아이들의 놀이 문화는 육체적, 지적, 정신적, 더 나아가 감성적 발달을 위해 필요하다. 사회성, 협동심, 소통, 함께 살아가는 방법 등 학교에서는 배우기 힘든 아이들 스스로의 성장기회인 셈이다. 교육당국은 틈나는 대로 전인적 성장(全人的 成長)을 위한 전인적 교육(全人的 敎育)을 강조한다. 하지만 전인적 성장은 경쟁을 통해 남을 이기는 법을 배우는 교육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아이들이 서로 부대끼면서 같이 지내는 법을 익히는 놀이 공간이야말로, 소박하지만 훌륭한 전인적 교육수단이 아닌가 한다.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루소는 자신의 교육철학을 담은 저서 '에밀'에서 "자연은 아동이 어른이 되기 전에 아동이기를 바란다. 이 순서를 흐트러뜨리려 하면 곧 부패하고 마는 조숙한 과일을 생산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또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의 4대 권리 중 하나가 발달권이다. 협약 31조는 '모든 아동은 편안하게 쉬고, 자신의 나이에 맞는 놀이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바로 놀 권리다. 우리 아이들에게 놀 권리를 보장해주고 놀이 공간을 되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임인년 새해에는 코로나19를 헤치고 우리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뛰어놀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한대희 군포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