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타의 전설은 12세기 경 시작됐다
허구 임에도 실제로 살아있는 사실
우리가 이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
사회적 실재는 어떠한가? 국가와 법, 제도와 규칙은 어떻게 실재하는가. 이들은 자연적 실재처럼 있지는 않지만 분명 우리에게 실제로 작동하는 실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사실 돈과 자본도 허구의 실재가 아닌가. 돈은 교환수단으로 만든 것이지만, 그것이 자본이 되는 순간 우리는 무역망을 건설하고, 세계경제 체제와 자본주의를 통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내었다. 이제 일이 노동이 되고, 교환 수단이 잉여가치를 만들어내는 자본이 되었다. 그와 함께 가난과 불평등이 현실이 되고 소외와 억압이 일상이 되었다. 사물이던 자본이 사회적 잣대가 되고 정신적 가치 기준으로 자리한다. 사회적 실재는 우리가 합의한 것이지만, 이 실재가 삶을 규정하고 규율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정의와 인권, 공정과 자유란 말은 모두 인간다운 삶을 위해 설정한 실재다. 그런 실재가 우리 삶의 의미와 행복을 결정한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더 나은 삶을 위해 현실을 바꿀 새로운 실재를 상상하게 된다.
여기에 관념론적 실재가 의미를 지니게 된다. 관념적 실재는 없는 것을 언어화함으로써, 없음을 통해 있음을 만들어내는 정신적 활동의 결과다. 없음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있는 것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감각할 수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이 없으면 있는 사물도 없는 것과 같게 된다. 쓸모없는 것이 없으면 쓸모 있는 것도 쓸모가 없어진다. 관념적 실재는 이처럼 없는 것, 감각할 수 없는 것을 보이게끔 해준다. 유니콘과 요정의 세계는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보이게끔 해준다. 천사와 악마는 선과 악을 형상화하는 언어다. 그 이상의 세계를 상상하지 않으면 그 이하의 세계는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은 이런 정신적 작업을 수행하는 학문이다. 예를 들어 철학은 신실재론이나 비인간 존재와 함께, 사물과의 관계에 따라 실재를 달리 이해하려는 행위자 연결망 이론 등을 새롭게 논의하고 있다. 오존층의 구멍과 녹아내리는 만년설, 거대한 쓰레기 섬 등은 인간의 행위가 없었다면 결코 생기지 않았을 실재다.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인간이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하지 않았다면 없었을 일이다. 그래서 철학은 이러한 사실을 새롭게 언어화함으로써 우리의 현재는 물론 나아가야할 세계를 새롭게 상상하게 만든다. 실제로 없지만 그 없음이 없으면 실제로 있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된다. 이런 관념적 노력이 없으면 우리는 공허함과 의미 없음의 늪에 빠져 허덕이게 될 것이다.
사회적·관념론적인 실재가 있듯이
새해도 쓸모없음 더많이 생각했으면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보이지 않는 것, 쓸모없는 것, 없이 있는 것을 없애려 한다. 돈과 자본이 되는 것, 쓸모 있는 것만 남겨두려 한다. 교육은 쓸모없는 학문을 쓸모없다고 없애려 한다. 쓸모 있는 것만 가르치라고 강요한다. 쓸모없는 땅이 있어야 쓸모 있는 땅이 쓸모 있게 된다. 없음이 사라진 사회는 얼마나 공허한가? 없음을 생각하지 않으면 있음도 의미를 잃게 된다. 크리스마스가 허구가 되면 예수도 사라지고 그가 보낸 생명의 빛도 없어진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없음을 통해 있음을 믿는 사람들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물론 믿지 않는 사람도 새해에는 이 쓸모없음을 더 많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