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1812년 2월 영국 의회는 기계를 파괴하는 노동자를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 법에 따라 이듬해 2월 '러다이트' 운동을 주도한 14명의 노동자를 사형시킵니다. 기계를 파괴했다고 사형이라니요. 기계가 세상을 지배한 영화 '매트릭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실제 세상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산업혁명 기계 등장에 일자리 잃고
노동자들 기계 파괴 '러다이트 운동'


강준만의 '교양 영어 사전'에 따르면 러다이트(Luddite)라는 말은 당시 영국 중북부에서 기계 파괴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자 제너럴 러드(General Ludd)에서 왔습니다. 제너럴 러드가 실존 인물인지, 홍길동 같은 가상의 인물인지는 의견이 갈린다고 합니다.

영국 노동자들은 왜 기계를 파괴했을까요. 산업혁명으로 기계가 등장하면서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본가들은 기계를 이용해 이윤을 극대화했지만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일을 한다해도 받을 수 있는 임금이 고작 빵 하나를 살 수 있을 정도에 그쳤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자 노동자들은 기계를 때려 부수기 시작합니다. 일자리를 달라는 요구기도 했고, 정당한 임금을 제시하라는 움직임이기도 했습니다. 흔히 한국 노동계에서 '태업'으로 번역되는 사보타주(Sabotage)도 이 당시 만들어진 말입니다. 프랑스 노동자들인 나막신(Sabots)을 기계에 던져 넣어 망가뜨린 데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러다이트'라는 단어가 다시 소환되고 있습니다. 역사적 의미의 러다이트 운동은 산업혁명 당시 기계를 파괴한 행위를 뜻하는 것이라면 현대적 의미의 러다이트는 문명·기술 발전이 노동자를 소외시키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e커머스 성장세에 설곳 잃은 마트 노동자(경제부)8
대형마트 노동자들이 코로나19 사태 후 비대면 소비가 증가하며 근무시간이 줄어드는 등 일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3일 경기도 내 한 대형마트에서 협력업체 노동자가 판촉 행사 근무를 서고 있다. /경인일보DB

무슨 말인지는 경인일보가 보도한 <마트보다 먼저 사라지는 '마트 노동자'>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10년전 휴일 없이 일한 판촉판매원
문명·기술의 발전으로 일자리는 잃어
피할 수 없는 운명 vs 사회안전망 필요


최모(58·시흥시 거모동)씨가 집 근처의 한 대형마트에서 화장품 판촉 행사 일을 시작한 것은 10년 전 일이다. 대형마트를 찾는 소비자들의 발길이 북새통을 이루던 시절이었다.

최씨는 "마트에 판촉 행사가 매일 끊이지 않았고 영업 규제도 없었던 터라 한 달에 24~25일은 '휴일'도 없이 불려 나가 일할 정도였다"며 당시 상황을 되짚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들의 등장으로 대형마트를 찾는 발길이 하나둘 줄어들었다. 급기야 최씨가 다니던 마트는 문을 닫았다. 이에 3년 전, 인근 마트로 자리를 옮겼지만 이곳마저도 폐점 위기에 놓였다.

최씨는 지난 8월 승용차로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수원의 한 대형마트로 떠밀리듯 일터를 옮겨야 했다. 최씨의 일터가 바뀌는 사이, 주변에 있던 많은 동료들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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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노동자들이 코로나19 사태 후 비대면 소비가 증가하며 근무시간이 줄어드는 등 일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3일 경기도 내 한 대형마트에서 협력업체 노동자가 판촉 행사 근무를 서고 있다. /경인일보DB

최모씨의 사례는 200년 전 러다이트 운동을 떠올리게 합니다.

대형마트에는 상품 제조사들과 마트에 제품을 납품하는 유통사들이 고용한 판촉 판매원이 있습니다. 주로 지나가는 손님을 붙잡아 자사 상품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들을 통해 상품을 구매하면 제품 하나를 더 얹어주는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죠.

2000년대 초반부터 대형마트가 국내에 상륙하면서 대개 수능을 마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경력단절 여성, 중년층 등이 이 일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도 곧 종료될 것 같습니다. 바로 문명·기술의 발전 때문입니다. 최근 몇 년, 길게 봐도 3년 사이 e커머스 시장은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쿠팡, 쓱닷컴, 마켓컬리 등 간편하고 빠르게 마트 상품을 제공받을 수 있는 채널이 생기면서 소비자들도 급격히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간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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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노동자들이 코로나19 사태 후 비대면 소비가 증가하며 근무시간이 줄어드는 등 일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3일 경기도 내 한 대형마트에서 협력업체 노동자가 판촉 행사 근무를 서고 있다. /경인일보DB

그 영향으로 대형마트도 줄게 됐고 자연히 고용된 마트 노동자도 줄게 되는 추세입니다. 피할 수 없는 문명·기술의 발전으로 노동자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상황, 바로 러다이트가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문명·기술의 발전은 편리함이란 밝음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일자리가 사라지는 어두운 그늘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사라지는 마트 노동자, 여러분은 이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우리 사회는 이런 사람들을 보호할 사회 안전망을 만들어야 할까요.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