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포항의 한 무인모텔에 미성년자 5명이 입실해 난동을 부렸다. 술 마시고 침구를 담뱃불로 지져놓고 창문과 입구 손잡이를 파손했다. 모텔 주인이 야단을 치자 이들은 "우리는 미성년자이고 촉법소년이니 죽이고 싶으면 죽여보라"고 대든 것은 물론 출동한 경찰에도 욕설을 퍼부었단다. 모텔 주인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연을 올리자, 소년들을 엄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쳤다. 이들 중 4명은 15세로 밝혀지자 싹싹 빌었다니 어이가 없다.
우리 형법 제9조는 14세 미만을 형사미성년자로 규정해 범죄행위를 벌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다만 소년법에 따라 보호처분 할 수 있는데 전과기록은 남지 않는다.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으로 형벌을 받을 범법행위를 한 형사미성년자가 바로 '촉법소년(觸法少年)'이다. 아무리 중죄를 범해도 범죄기록이 남지 않는 소년원 보호 조치가 고작이다.
그런데 이 조항을 악용하는 청소년들의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범법이 만연하고 있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촉법소년 소년부 송치 건수가 총 4만건을 육박하고, 해마다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절도 2만건, 폭력 9천여건, 추행 2천여건에 살인(8건)과 강간(42건) 같은 강력범죄도 적지 않다.
작년엔 렌터카를 훔친 중학생 8명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을 치어 숨지게 했다. 성착취물 채널을 운영한 12세 소년도 있고, 흡연을 꾸짖은 어른이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가 쑥대밭을 만든 중학생들도 있었다. 딸을 성추행하고 동영상을 찍은 가해 소년을 처벌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한 한 엄마의 국민청원도 있었다. 상당수 범법 소년들과 부모들은 촉법소년을 앞세워 법대로 하자는 태도로 공분을 샀다. 범죄자가 준법을 요구하는 적반하장에 피해자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온라인 정보화 시대를 맞아 청소년들의 사회화 연령이 낮아지는 추세다. 중국은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12세로 낮추었다고 한다. 처벌이 능사는 아니겠으나, 도를 넘은 미성년자들의 법 희롱과 부모들의 무책임엔 대책이 있어야겠다. 단순히 처벌 연령 인하 논란에 그칠 게 아니라, 범죄 피해의 실질적 회복을 위해 범죄 소년 부모의 민사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무엇보다 어른들이 정신 차려야 한다. 법을 희롱하는 어른들을 보고 아이들이 무얼 배우겠는가.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