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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설강화' 방영중단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30만명을 넘었다는 뉴스에 놀라 보지도 못한 드라마 홈페이지를 열었다. "분단의 엄혹한 현실 속에서…끝내 서로에게 희망이 되어준 두 청춘의 뜨거운 사랑. 그들의 사랑이 이 땅을 가로막은 장벽을 녹이고…." 분단의 장벽을 녹이는 로맨스라니, 홍보 문장답게 거창하다.

그런데 국민청원의 취지는 심각하다. 간첩인 남자 주인공 때문에 북한의 민주화 운동 개입설이 떠오르고, 안기부를 미화했다니 말이다. "노골적으로 정치의 압력이 들어간 걸로만 보인다"는 추정과 함께 촬영 중단과 촬영 분량 제거를 요구했다.

JTBC가 지난주 방영을 강행하자 방영금지 여론이 번지면서 사회적 쟁점으로 불거졌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는 "운동권에 잠입한 간첩, 정의로운 안기부, 시대적 고민 없는 대학생, 마피아 대부처럼 묘사되는 유사 전두환이 등장하는 드라마에 문제 의식을 못 느낀다면 오히려 문제"라고 설강화 비판에 올라탔다.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역사적으로 너무 무책임하고 너무나 명백한 왜곡 의도를 지닌 드라마"라 비판했다.

시사평론가 진중권의 반박이 예리하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의 초석"이라며 '다른 시청자들의 권리를 침해할 권리는 없다'고 했다. 설강화 1, 2회의 시청률은 3.9%였다. 전체 2천만가구 중 78만가구가 시청한 셈이다. 실제 시청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테고 드라마를 본 소감은 천차만별일테다. 일각의 주장과 시선으로 전체의 권리를 제한할 수 없는 건 자유주의 체제의 원칙이니 진중권의 주장은 타당하다. 표현의 자유가 사라지면 펑솨이의 나라가 된다.

드라마 제작진의 공식 입장은 구구절절해 안쓰럽다. "기득권 세력(군부정권)이 권력 유지를 위해 북한정권과 야합한다는 가상의 이야기"라며 "역사 왜곡과 민주화운동 폄훼 우려는 향후 드라마 전개 과정에서 해소될 것"이라 해명했다. 창작된 주인공에 분노한 진보 진영 시청자를 달래려 가상의 군부정권-북한정권 야합을 강조하니, 이번엔 군부정권 인사들과 북한 당국이 시비 걸까 걱정이다.

제작진 해명의 핵심은 마지막 문장이었다. "JTBC가 핵심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콘텐츠 창작의 자유와 제작 독립성입니다." 그렇다면 진중권의 말대로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 달라"고 했으면 충분했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