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시간이 자정을 향해가던 무렵, 오산의 한 의류수거함에서 숨진 영아가 발견됐습니다. 일어나선 안 될 비극이었습니다. 영아를 발견한 건 헌 옷을 수거하던 사람이었죠. 발견 당시 영아는 탯줄을 단 채로 이불에 싸여 숨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탯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출산 직후 버려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친모는 얼마 전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친모의 나이는 24살이었습니다.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경찰이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언론에선 이런 일을 흔히 '영아 유기 사건'이라고 칭합니다.
낳자마자 자신의 아이를 버려야 하는 심경과 사정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분명한 건 '영아 유기 사건'이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자주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지난해에는 20대 친모가 서울시 관악구에 위치한 주사랑교회 베이비박스 앞에 신생아를 유기해 숨지게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베이비박스'란 아이를 길거리에 유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상자로, 지난 2009년 서울시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 그리고 2014년 군포 새가나안교회에 설치됐습니다.
영아는 잠시 잠깐 돌보지 못해도 목숨이 위험한 여린 존재이기에 아이를 버릴 바에는 베이비박스에 놓아두고 가란 취지입니다. 아이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 베이비박스죠.
군포 베이비박스 유기 보름에 한명
가정보호 아동 3% 입양도 법적 장벽
군포 새가나안교회에는 지난 7년 동안 142명의 아이가 들어왔습니다. 보름에 한 명꼴로 아이가 유기된 셈입니다. 주사랑공동체교회의 베이비박스에는 2009년부터 모두 1천932명의 아이가 유기됐죠. 무려 이틀에 한 번꼴로 아이가 버려진 것입니다.
주사랑공동체 관계자는 "대부분 나이가 어린 미혼모들이 찾아옵니다. 근친, 이혼, 성폭행 등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근친관계, 임신한 뒤에 이혼해서 더 이상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된 경우, 강간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된 사람. 모두 제3자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는 친모들이었을 겁니다. 특히 부모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라게 될 아이들의 심경은 가늠할 수조차 없습니다.
통계도 아이들의 어려움을 증명합니다.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들은 건강 검진을 거쳐 영아 일시보호시설에서 보호를 받다가 아동복지시설 등으로 보내집니다. 가정으로 보내지는 '가정 보호' 아동은 불과 3%에 불과했습니다.
감사원 통계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동 962명 중 가정 보호를 받은 아동은 33명으로, 나머지 929명이 시설로 보호조치됐습니다. 이런 통계의 배경에는 관련 법이 있습니다. 2012년 개정된 입양특례법은 출생신고를 한 아이의 경우에만 입양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
주사랑공동체 측은 "출생신고가 힘들어서 베이비박스를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현행법으로 입양의 전제를 출생신고로 하다 보니 입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입양 문화가 발달한 서구 국가들처럼 익명으로 출산 및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보호출산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또 입양을 위한 출생신고를 가정법원이 받아주되 부모의 정보는 가정법원이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비공개로 가지고 있다가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미혼모단체들은 보호출산제보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 지원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긴급 복지제도, 쉼터 등 임신기 여성에 대한 전반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체계적인 지원책을 마련해 아이를 버리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주장이죠. 버리기 쉽게 하지 말고 혼자서도 키울 수 있게 하라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두 가지 주장 모두 일리가 있는 말들입니다.
경기도 장애학생 2만명 거주하는데
특수학교 고작 28개 정원도 태부족
교육받을 권리조차 차별받는 현실
여기 경인일보가 보도한 또 다른 기사가 있습니다. 미혼모만큼이나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존재, 특수교육을 필요로 하는 장애아 이야기입니다. 경기도에는 2만명이 넘는 초·중·고 장애학생이 거주하고 있지만 특수학교는 28개뿐입니다.
특수학교가 적다 보니 거주지 근처 특수학교에 아이를 보내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장애학생들은 일반 학생에 비해 더 세심한 관찰과 배려가 필요하기 때문에 부모들은 거주지 근처의 학교를 보내고 싶지만 여건이 따라주지 않는 것입니다.
'교육받을 권리'에서조차 차별을 받고 있는 현실인 것이죠. 남양주의 사례가 바로 그렇습니다. 남양주에 거주하는 장애아의 부모 A씨는 국민청원에 다음과 같은 사정을 올렸습니다. 거주지 근처 특수학교 정원이 12명인데 장애 정도 순으로 입학 정원을 자르다 보니 아이가 입학하지 못하게 된 상황이 된 겁니다.
A씨는 교육청이 단 2시간 아이를 관찰하고 장애 등급을 자의적으로 매겼다고 반발합니다. 교육청도 대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일반 학생과 달리 장애 아동은 통계나 추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수요를 예측할 수 없어 교육 공급을 예정하는 것이 힘든 상황이죠.
교육청은 "희망자에 비해 (특수학교)설립이 부족하지만,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부지 선정이 쉽지 않다. 각 지역마다 폐교를 활용하는 등 학교를 늘리기 위한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부모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숨지거나 시설로 향할 수밖에 없는 영아들이 있습니다. 장애를 안고 태어나 교육권을 제한받는 장애 학생도 있습니다. 연말을 맞아 우리 주변에 어려운 동생과 친구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며, 내년에 우리가 맞을 사회는 좀 더 나아져 있길 바라봅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