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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영 사회부 차장
피해자에 감정을 이입하는 일은 기자가 하지 말아야 할 행위 중 하나다. 감정에 휩싸여 자칫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감정을 이입할 수 없는 대상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어떨까. 지난 19일 오산시 궐동의 한 의류수거함에서 숨진 영아가 발견됐다. 탯줄이 그대로 있었고 옷에 싸인 채 숨을 거둔 상태였다고 한다. 구스다운 패딩을 입어도 추운 한 겨울밤에 금속 재질의 통속에서 숨을 거둔 아이는 어땠을까. 희로애락을 구분할 수 없고 감정을 표현할 수도 없어서 할 줄 아는 것이라곤 고작 우는 것 뿐이었을, 그런 존재였을테다.

며칠 동안 마음에 돌이 걸린 것처럼 밤잠까지 뒤척이다 성탄이 지나서야 의류수거함 앞을 찾아갔다. 거기에 한 시민이 꼭 내 심정 같은 말을 써뒀다.

"이 추위에 엄마 따뜻한 품에 안겨 보지도 못하고 젖도 한 모금 먹지 못하고 옷도 한 벌 없이 얼마나 춥고 무섭고 배가 고팠을지 상상도 못하겠구나. 어젯밤에도 아침에도 얼굴도 모르는 너가 안타깝고 짠하고 가슴이 너무 아파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구나. 어른이라서 너무 미안하구나."

성탄 직전 법원은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을 공개한 '배드파더스' 대표활동가에 유죄를 판결했다. 1심서는 무죄가 나왔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1심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의 무죄 평결이 '사실 관계'에만 적용되고 '법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나 개인 신상 공개가 사적 단체의 권한 밖이라거나 배드파더스가 사진 공개·삭제 등 운영상의 난맥상을 보였다는 점은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판단이었다.

벌금 100만원을 선고하되 유예한 것만 하더라도 재판부의 고심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한 명의 어른으로 또 한 사람의 기자로 새해에는 부디 의류수거함 속에서 생명이 꺼지는 일이 없길, 양육비가 없어 생활을 못하는 아이들이 없길, 그래서 작년보다는 올해가 나아졌다는 말을 내년 연말쯤엔 웃으며 할 수 있길 바라본다.

/신지영 사회부 차장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