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연상호 감독의 6부작 드라마 '지옥'이 넷플릭스를 달구었다. '오징어 게임', '마이네임', '갯마을'에 이은 흥행작이었다. 드라마 '지옥'은 지옥에 대한 인간의 공포심을 이용하여 세상을 통제하려는 종교집단과 그 광기의 포로가 된 사람들을 다룬 공포영화다. 느닷없는 지옥행 고지(告知)를 받은 사람들은 공황에 빠지고, 고지받은 사람을 지옥사자들이 살해하는 '시연(試演)' 장면들은 시청자들을 긴장시키고 시선을 화면에 묶어 놓는다. 새진리회와 같은 신흥종교와 심판 대행자인 '화살촉'이 폭력으로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극 중 지옥 사자의 외형이나 '시연' 장면은 저승사자의 모습이 아니라 조직폭력배들의 난동에 가깝기도 하고, 기괴함을 넘어 우스꽝스럽기도 한데 이 설정은 지옥 사자의 정체를 재난의 은유로 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려는 의도일 수 있겠다.
지옥 실현되길 바라는 '권선징악'적 상상은
'공정' 아닌 불공정 세상에 대한 분노로 촉발
이 드라마의 이야기들은 지옥행 고지라는 재난을 맞닥뜨린 사람들이 겪는 천차만별의 혼란상으로, 영문도 모른 채 공포에 떨다가 죽어가야 하는 억울한 피해자들이 있고, 피해자를 돕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돕는 사람들도 있다. 비극적 재난을 악용하여 신을 참칭하며 권력으로 군림하는 자들도 있다. '화살촉' 집단에서 주술사처럼 행동하다가 잘못을 깨닫고 피해자를 돕는 '소도(蘇塗)'로 피신해 있다가 다시 '화살촉' 집단으로 되돌아가는 극심한 내적 혼란을 겪는 인물도 나온다. 이러한 인간군상은 사회의 축도이자 인간 심리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상징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민혜진 변호사는 아기를 안고 택시를 탄다. 이 아기는 천사의 고지를 받고도 죽지 않고 살아난 유일한 존재로 시즌2를 암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지옥으로부터 벗어나는 택시 안에서 민혜진 변호사와 운전기사의 대화가 이 영화의 주제이다. 택시 운전기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인간들의 세상이며, 인간들의 일은 인간들이 알아서 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이 말은 주인공 민혜진 변호사의 말이기도 하다. 불완전하지만 그렇다고 위임할 수 없는 권리로서의 자율 말이다. 세속 사회와 공동체의 제1공리로서 자율 말이다.
문화·법·제도, 인류 지혜이지만 결함 투성이
모순 해결할 주체 신이 아닌 시민일 수 밖에
천국과 지옥, 극락은 지상과 이승의 선행을 권장하기 위한 상상적 세계임에도 이를 절대화하게 되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 교주를 신격화한 종교집단과 극단적 근본주의가 통치하는 신권국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지옥에 가깝다. 악인에게 지옥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권선징악'적 상상은 '공정'이 화두가 되고 있는 우리 사회처럼, 정의롭지 못한 사회, 불평등과 불공정으로 얼룩진 세상에 대한 분노로 촉발된 불길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의 문화와 제도와 법은 장구한 세월 동안 인류가 축적해온 지혜의 결과물이지만 여전히 결함 투성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결함과 모순을 해결할 주체도 결국은 더 나은 공동체의 수혜자인 인간 자신, 신이 아닌 시민들일 수밖에 없다.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