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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부인 멜린다 게이츠가 설립한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보유 자산이 510억 달러가 넘는 세계 최대 자선단체이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해 지원한 돈만 2조원이다. 빌 게이츠도 MS 경영자 시절 '실리콘밸리의 악마'로 불렸다. MS의 독점력으로 경쟁기업들의 씨를 말린 탓이다. 결국 미국 정부가 반독점법 위반으로 칼을 겨누자 빌 게이츠는 경영에서 물러났다. 이 시절 멜린다의 설득으로 세계공헌 재단을 세운 것이다. 빌 게이츠는 기부 덕분에 사업가 시절보다 더 큰 명예와 영향력을 누린다.

'죽음의 상인'이라는 세평에 괴로워하던 노벨은 유산으로 '노벨상'을 만들었다. 석유왕 록펠러는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통고받고 자선사업을 시작했다. 그 덕분인지 40년을 더 살았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 등 미국 고액 기부자 50인이 2020년 한 해 동안 기부한 금액이 247억 달러나 된다. 거부들의 천문학적인 기부와 자선이 세상에 끼친 선한 영향력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도 거부들의 기부에 세상의 평판, 사업의 유지 등 다양한 동기와 의도가 엿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독점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은 의무로 볼 수도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기부금도 그들 자산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고.

최근 70대 미국 교포가 서울 서대문경찰서 신촌지구대에 2천 달러를 보내왔다. 그는 고학생이던 1970년대 중반 신촌 리어카 아주머니에게 홍합국 한 그릇을 얻어먹었다. 다음날 값을 치르겠다 했지만 돈이 없어 갚지 못했다. 평생 홍합 한 그릇 값을 치르지 못한 죄책감이 들었단다. 그래서 신촌의 어려운 분들께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해달라고 부탁했다. 과연 그 아주머니가 돈 받을 요량으로 홍합국을 팔았을까? 모두가 어렵던 시절이었다. 리어카로 홍합국 행상을 하던 아주머니도 외상 한 그릇을 간청하는 청년만큼 가난했을 테다. 그저 홍합국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으로 청년의 주린 배를 달래주었을 것이다.

미리엘 주교의 자선이 죄수 장발장을 선한 마리엘 시장으로 만들어 비참한 사람들을 구했다. 한 아주머니의 한 그릇 홍합국 선행이 반세기를 지나 불우 이웃의 따뜻한 밥 한 끼로 되돌아왔다. 슈퍼 리치들의 기부 블록버스터를 압도하는 한 그릇 홍합국의 윤회. 스산한 연말이 따뜻해졌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