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이를테면 너희들이 어떤 일을 할 때 문제라고 생각되는 게 있다면 자유롭게 너희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말하는 것도 아이들의 권리이지."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떤 아이들은 누가 의견을 물어본 적이 없다고도 했고, 스스로 의견을 말해본 적도 별로 없다고 했다.
아동권리옹호단에서 아이들과 함께 활동한 한수림 선생님도 적잖이 당황했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혹시 ㅇㅇ이가 마을에서 지낼 때 힘들었던 거 뭐가 있을까?"라고 풀어서 물어보아도 아이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길거리에 쓰레기가 많이 버려져 있어도, 깨끗하지 못한 옷을 계속 입어도 아이들은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 건강하고 맛있는 밥을 먹는 일을 돕기 위해 센터에서 간식을 제공하는 것도 '건강하게 자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함이란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6월부터 시작된 아동권리옹호단 활동은 그렇게 산 넘어 산이었다. 특히 옹호단의 주된 활동 중 하나였던 '주제선정워크숍'은 아이들 입장에선 생각의 한계에 부딪히는 일이었다.
아이들이 직접 발굴한 아동권리 침해 사례가 담긴 포스터. /시흥다어울림아동센터 제공
마을을 중심으로 아동권리를 침해하는 문제가 무엇일까를 고민해야 하는데, 쉽게 이것이 문제라고 말을 하기 어려웠다. 거리에 쓰레기가 있고 공원에서 어른들이 아무 곳에서나 담배를 태우며 골목마다 자동차들이 마구잡이로 주차가 돼 있는 환경에 대해, 아이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특별히 그 환경의 부당함에 대해 알려준 이도 없었고, 혹은 그렇지 않은 환경을 경험한 적도 없으니 더욱 그럴 것이다. 아이들은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계속해서 한계를 깨부수고 있었다.
15명으로 출발한 아동권리옹호단은 4명의 아동이 중도이탈하기도 했다. 주로 센터에서 하던 놀이, 심리프로그램과 달리 주체적인 생각을 표현해야 하는 일이 너무 어려워서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남은 아이들에게 물었다. "새롭게 참여할 친구들을 모집할까" "아니요. 지금 우리끼리 계속 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11명의 아이들이 옹호단에서 활동했다.
우리 의견도 안 물어보고, 공원에 그네가 사라진 것도 그럼 우리 권리가 사라진거죠?
활동을 이어가던 어느 날, 한 아이가 선생님에게 물었다. 우리 주변에 아동의 권리를 침해한 사례를 찾아 주제로 발전시키는 워크숍을 진행 중일 때였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내 주변 환경이 잘 바뀌는 것 같아요. 원래 그네가 있었거든요. 근데 우리 의견도 안 물어보고 그네가 사라졌어요." 더디게 걸어왔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조금씩 깨달았다.
아이들이 직접 발굴한 아동권리 침해 사례가 담긴 포스터. /시흥다어울림아동센터 제공
그렇게 아이들은 지역사회 권리침해 사례 5개를 발굴했다. 동네 길거리마다 버려진 쓰레기를 사진으로 찍었고 '주변이 아파요' 라는 의미를 담아 포스터를 만들었다.
또 다른 아이들은 '이 공원은 금연·금주 공원입니다'라고 적힌 플랜카드와 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 오토바이를 타고 가며 담배를 태우는 어른들을 사진으로 찍어 '우리의 숨 쉴 권리를 침해하는 사람들' 포스터를 제작하기도 했다. 또 어린이보호구역에 불법으로 주차한 차량과 속도·신호위반 하는 차량, 중앙선을 넘어서 위험한 운전을 하는 차량을 사진으로 찍은 아이들도 있었다. 그리고는 '어린이 구역에서 불법주차한 자동차'라고 빨간 글자로 고발했다.
권리를 알려면 '경험'을 해야 한다. 물어봐주고 생각하게 하고 말하게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고되고 어렵지만, 그래야 한다. 그래야 건강하게 생각하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