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_-_기명칼럼필진.jpg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가르친다. 국가와 정치는 그러한 계급투쟁의 내용이자 외양이라고 한다. 그들은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하면 계급이 사라지고, 국가와 정치도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설사 그러한 사회에서도 사람들의 삶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분배를 해결하는 행정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욕구를 알 수 없고 적정한 분배를 가늠할 수 없고 사람들의 계획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질 행정은 고도의 계산과 방정식을 해결해야 하는 수학, 통계학과 이를 일선에서 전달해야 하는 엄청난 행정요원들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장과 정치는 이러한 복잡한 사회측정의 대체도구로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K방역은 없다'라는 책이 발간되었다. 'K방역은 과연 존재했나?'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의료방역정책에 대해서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그 가운데 중요한 질문은 코로나19 방역정책이 누구 혹은 어떤 기구에 의해서 분석되고 입안되고 집행되었는가의 문제이다. 군복을 걸친 오바마 대통령이 전체 작전을 지휘하는 군지휘부의 뒤편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다소 생경한 사진을 목도했던 우리 국민들은 K방역도 전문가들의 주도하에 과학적 근거에서 진행되었던가 묻고 있다. 의료전문가와 보건행정가들이 전면에 나서는 듯하지만, 최종 단계로 갈수록 정치적인 결정과 정치적 홍보가 주도하지는 않았는지 의심스럽게 쳐다보고 있다. 정치 과잉의 나라에서 의료정책의 전문가들은 최종적으로 결정된 정치방역을 정당화하는 도구 수준에 머무르지 않았는지 묻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적 유물론에서 봉건체제에서 자본주의체제를 거쳐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로 발전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특히 자본주의는 인간사회의 생산력을 획기적으로 높임으로써 인간의 경제적 삶의 질을 높인다고 한다. 그 높은 생산력을 이루기 위해서 높은 노동생산성은 필수적이지만 그러한 노동규범은 자연발생적이지 않고 고도의 관리감독체제하에서 가능할 뿐이다. 자본주의적 착취를 건너뛰기 위한 스타하노프운동이나 대약진운동, 천리마운동 등은 사회주의적 노동규범으로 생산성을 높이려는 시도들이었다. 양질의 사회복지도 높은 생산성의 선진자본주의사회에서 가능했던 만큼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적 체제는 높은 생산성이 필수적이라 볼 수 있다. 높은 생산성은 정치적 흥정이나 공동체적 자발성으로 성취하기 어렵다. 


민주주의 선거는 정치적 이념 전장
비현실적 이념적 정책 내세워서
현실적인 관료·행정 백안시하는
정치집단은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
정치인들 유능한 행정 하도록 해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을 때에, 자본주의 시장생산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드는 첫 번째 질문은 '과연 만들어진 상품은 다 팔릴까', 즉 가치 실현의 문제이다. 그 전제가 합당하지 않으면 그에 기반한 노동가치, 잉여가치 혹은 착취 등의 이야기들은 가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일국의 시장에서 실현되지 않으면 전 세계의 시장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뒤따른다. 왜 국제관계가 정치체제와 사회이념으로 (군사적) 동맹과 적대를 만들어내면서도 근본적으로 철저한 경제적 실리를 바탕으로 진행되는가를 설명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정치적 이념이나 가치는 뒷전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든다.

민주주의체제에서 선거는 정치적 이념의 전장이다. 정치적 이념은 상상의 프레임이다. 현실과 상당한 간극이 있고, 충돌이 있게 마련이다. 정치 과잉은 그러한 정치적 이념을 실현시키는 조건 상황으로서의 현실적 요소들을 도외시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선거를 통해 정치인을 선출하고, 그 선출된 정치인에게 적절한 정책과 행정을 기대한다. 따라서 선거 이후에는 정치적 이념과 실용적 행정을 잘 결합해야 한다. 만일 부정합이 이루어진다면, 선거에서 지지한 유권자들이 선거 이후에 떠나기도 하고 선거에서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들이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이념적 정체성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제시되었던 이념적 정책들이 현실을 움직이는 정책으로 수정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전문가들과 행정가들에 의존해야 한다. 비현실적 이념을 들고서 현실적인 관료와 행정을 백안시하는 정치집단은 실패하게 마련이다. 정치인들을 선출하더라도 그들이 유능한 행정을 하도록 해야 한다. 국가라는 근대적 공동체는 일단 공동체의 존속과 부국강병이라는 두 가지의 목표를 이탈하면서 다른 이념적 가치를 추구하기는 참 어렵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