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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표 논설위원
지난 연말, 권칠승(화성병) 국회의원 지역사무실에 중년 남성 2명이 들이닥쳤다. 화성지역 아스콘업체 대표라는 두 사람은 의원과의 면담을 요구하다 성명서를 놓고 갔다. 권 의원은 아스콘 업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다. 지역 보좌관은 권 의원에게 사정을 전하겠다 하고는 답신이 없다고 한다. 대체 뭔 일인가.

국내 기업 99%는 중소기업이다. 근로자는 전체 기업의 82.7%나 되는데, 매출은 절반(48.7%)이 안 된다. 중견·대기업에 치이고, 떠밀리는 열악한 기업환경을 숙명으로 안다. 외국인 노동자도 외면하는 인력난에 문을 닫는 업체가 부지기수다. 대다수 CEO는 성장이 아닌 부도·폐업을 걱정하는 처지들이다.

역대 정부는 산업생태계 피식자인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려 정책수단을 가동했다. 1979~2006년 시행한 고유업종제도가 대표적이다.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법률로 보호해 시장확보와 사업기반 정착을 돕는 방어막이다. 중견·대기업을 문 앞에서 막아내기에 불공정 요인은 원천봉쇄된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역시 대기업 진출을 막으려는 고육책이다.

다른 장치로는 '중소기업자 간 경쟁품목'이란 게 있다. 2006년 이후 전국 공공기관 입찰에 적용된다. 중견·대기업이 관급 시장에서 중소업체 몫을 잠식해 질식사시키는 뒤틀림을 막자는 취지다. 허약한 아이들을 보호하려면 덩치 큰 애들 접근을 막아야 한다. 3년마다 갱신하는데, 620개 품목이 대상이다. 조달 규모가 17조원을 훌쩍 넘었다. 


중견·대기업에 '20% 할당'… 中企 '초비상'
업계 "줄도산 위기, 정부가 사지로" 철회 요구


전국에 520여 개 아스콘(아스팔트 콘크리트) 업체가 산재한다. 도로, 공항, 항만, 신도시 개발 등 SOC 사업에 빠지지 않는 감초격 건설자재를 공급한다. 20만명 종사자와 가족의 생계가 달렸다. 사회간접자본재인 탓에 공급 물량 대부분을 민간이 아닌 공공에 의존한다. 정부가 매년 중소기업자 간 경쟁품목 대상으로 묶는 이유다. 민간 물량 비중이 많은 레미콘은 중견·대기업도 일정 부분 관급 물량을 공급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달 초 중기부는 행정예고를 내 아스콘도 중견·대기업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수도권, 세종, 충청지역 시장은 전체 물량의 20%까지 중견 이상 업체에 할당한다. 실질적 가격경쟁입찰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한다.

아스콘 업계는 초비상이다. 중견·대기업이 참여하게 된 것도 버거운데 물량 20%를 내줘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관급공사 물량이 매년 감소하는 최악의 상황에 설상가상이라고 울상들이다. 경기·인천 업체들은 '실정 모르는 정부가 업계를 사지로 내몰고 있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중기부 "상황 검토결과 철회 할 이유 없다"
'국가, 있어야 할 곳엔 없고…' 책 정독키로


새 기준에 따라 수혜를 받는 업체는 국내 통틀어 인천 S사, 화성 N사뿐이다. 대기업(유진기업)이 모체인 N사는 중소기업을 졸업했다. S사는 레미콘과 아스콘 사업을 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 2018년 코스닥에 상장해 아스콘 제품을 관급으로 납품할 수 없게 됐다. 관련 법에 따라 3년 유예돼 올해 말 졸업예정이다. 정부가 졸업생을 다시 학교로 불러들이는 비정상 행위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S사는 최근 레미콘 사업부문을 매각하는 내용의 공시를 냈다. 주력 핵심사업인 아스콘과 친환경 사업에 역량을 집중한다고 한다. 지난 11월엔 조달청과 544억원 규모 아스콘 공급계약을 했다고 공시했다. 2개월 사이 주가는 1천595원에서 한때 2천450원까지 급등했다. 업계엔 S사의 아스콘 기업 인수설이 나돈다. 졸업을 앞둬 관급판로가 끊길 위기의 기업이 레미콘을 접고 아스콘을 키우겠다는 반전(反轉) 드라마를 쓴다.

중기부는 지난주 아스콘조합에 공문을 보내 업계 의견을 불수용한다고 통보했다. 현 상황을 검토한 결과 경쟁품목 조정위 결정을 철회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업계는 "줄도산 위기에 내몰린 업계 현실을 외면하는 정부 태도는 이상할 게 없는데, 예상 밖 이른 회신에 놀랐다"고 비튼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지낸 김병준 교수는 지난해 '국가, 있어야 할 곳에는 없고, 없어야 할 곳에는 있다'는 책을 냈다. 문재인 정부 4년을 지켜보면서 집필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주마간산 격으로 대충 봤는데, 이번엔 정독하기로 했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