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소를 하다 열어본 상자속에
또 한뭉치 발견된 플로피디스크
'1998년~ 2001년까지 써댄 소설'
그렇게 나는 문예창작학과 학생이 되었다. 입학하자마자 선배들이 물었다. "왜 편입을 안 하고?" 나는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뭔데요?" 온통 어리바리했다. 이전 학교에 자퇴서를 내지 않아 이중 학적이 되는 바람에 문제도 생겼다. 한 학기가 다 끝나갈 무렵에야 학교를 찾아갔다. 조교가 한숨을 쉬었다. "말이라도 하지 그랬니? 교수님이 얼마나 마음이 상하신 줄 알아?" 미안해서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행정실에 자퇴서를 제출하려면 교수 연구동을 지나쳐야 했다. 나는 몰래 수능 공부를 할 때처럼 교수님과 마주칠까 봐 살금살금 벽에 붙어 겨우 행정실로 갔다. 나는 다시 그 학교를 찾아간 적이 없고 이제는 사범대학 건물이 갈색 벽돌 건물이었는지 흰 칠을 한 건물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아름다운 첫 소설을 쓰는 것에는 실패했다. 부끄럽게도 제목은 기억이 난다. 사범대학이 있는 동네를 배경으로 한 단편이었다. 나는 서둘러 절망했고, 그냥 임용고사를 보거나 유학을 가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후회했다. 두 번째로 쓴 단편 역시 우스웠고 두 소설 모두 나에게 남아있지 않다. 실은 오래 가지고 있었다. 핑크색 플로피디스크 안에 말이다. "이젠 정말 버려야할까 봐. 이 오래된 걸 읽어낼 컴퓨터도 없고." 나는 과거와 결별할 생각을 한 여자처럼 제법 비장하게 말했는데, 그걸 미련으로 잘못 읽은 남자친구가 플로피디스크를 읽어낼 수 있는 장치를 가져왔다. 나는 난감해서 "나중에 해볼게"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러고는 핑크색 플로피디스크를 버렸다. 사인펜으로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소설'이라고 쓰인 것이었다. 그 2년 동안 나는 아마 열 편쯤의 소설을 썼을 것이다. '고맙지만 사실 그 디스켓들은 버렸어'라고 남자친구에게 고백할 생각이었지만 이미 헤어진 후였다.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 어쩌면
반짝반짝한 소설 있을까? 설마?
중국어 대신 한국어를 공부하고 먹을 가는 대신 소설을 쓰는 일은 좋았다. 오르락내리락 성조 때문에 목이 아픈 중국어에 비해 한국어는 고요했으며 먹물이 튀어 옷을 버릴 일도 없었다. 이 일들이 새삼 떠오른 건 대청소를 하다 열어본 상자 속에 에구머니나, 플로피디스크들을 또 한 뭉치 발견했기 때문이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소설', '2000년부터 2001년까지 소설'. 내가 소설가가 된 건 2003년이었으니 나는 참 어지간히도 써댔나 보다. 버릴까 말까 나는 또 고민한다. 그 시절 남자친구가 가져다준 장치 같은 건 어디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저 안에 반짝반짝한 소설이 있을까? 설마 그러려고?
/김서령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