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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어떤 학자는 석기시대에도 범죄가 있었다는 주장을 한다. 국내 재벌기업 총수들 구속 사유를 보면 배임·횡령이 유난히 많다. 회삿돈이 내 돈이라는 오판이 화를 부른다. 눈앞에 보이는 돈을 돌려놓고 싶은 유혹은 참기 어렵다. 돈 관리를 맡고 있다면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커지기 마련이다. 금융기관이거나 회계·경리부가 횡령의 주된 발원지인 까닭이다. 수년 전 부산 새마을금고에서 직원이 115억원을 빼돌리기도 했다.

횡령사건은 발각되기 마련이다. 언제까지 감출 수 있느냐가 구속과 줄행랑의 경계지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치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불법 자금은 이런 상식을 뒤엎는다. 돈 가로채기를 이른바 '콩고물'로 치부한다. 콩떡을 만들다 보면 고물이 묻어나게 마련이라는 거다. 철면피 정치와 순진한 민도(民度)가 범죄를 일상처럼 순치했다. 80년대 초, 부정축재자로 몰린 박정희 정권 실세 정치인은 "떡을 만지다 보면 고물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 나는 콩고물밖에 못 먹었다"고 해 원조 인사가 됐다.

경찰이 '회삿돈 1천880억원 횡령' 혐의를 받는 오스템임플란트 직원 이모씨를 검거했다. 이씨는 혐의 대부분을 인정했다고 한다. 앞서 동종업계 국내 1위 기업인 오스템은 그를 횡령혐의로 고소했다. 사실로 확인되면 국내 역대 최대금액 횡령사건이 된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코스닥 단일 종목에 1천400억원을 투자했다, 주식 대부분을 다시 매각했다. 도피 직전 한국금거래소에서 금괴 약 800㎏(680억원 상당)을 직구매했다. 파주시 건물을 아내와 여동생에게 미리 넘겼다고 한다. 회사 자본금의 92%나 되는 거액을 어떤 방법으로 빼돌렸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치밀하면서도 대범한 수법에 경찰도 놀랍다는 반응이다.

회사는 3개월 지나도록 범죄행각을 몰랐다고 한다. 주식거래가 정지됐고, 상장폐지도 배제할 수 없다. 1년 사이 4배 이상 급등한 주식을 산 개미투자자들 피해가 불가피하다. 연초 랠리를 기대한 주식시장에도 악재다.

혼자 2천억원 가까운 돈을 횡령한 이유는 뭘까. 보관이 쉽지 않은 수백㎏ 금괴는 또 뭔가. 경찰은 공모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사상 최대 횡령사건의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일 못잖게 투자자 보호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