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1월 1일, 해가 진 이른 저녁. 수원시 고등동 주거 밀집 지역에 위치한 한 2층짜리 단독주택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모두 타버린 가구부터 검게 그을린 벽지까지, 안전핀이 뽑히지 못한 채 거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은 소화기가 화재 당시 그날의 긴박했던 상황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20분 만에 불은 진화되었지만, 1층 면적 70.2㎡을 모두 태울 만큼 어마어마했는데, 이 화재의 원인이 바로 '식은 통닭'을 데워 먹으려다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전모(55)씨ㅣ화재 현장 피해자
오후 5시에서 6시쯤 되는 것 같아요. 저하고 둘째 아들(12)은 피곤해서 각자 방에서 자고 있었고 치킨 사 온 것이 있었어요. 첫째 아들(13)이 치킨이 차가우니까 따뜻하게 데워먹는다고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붓는 과정에서 식용유가 옆에 좀 튀었나 봐요.]
스마트폰 게임을 하려고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가스레인지에서 불기둥이 치솟으면서, 결국 엄청난 화마가 집 전체로 번졌습니다. 자다 깬 50대 아버지는 손 쓸 틈도 없이 두 아들을 데리고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전모(55)씨ㅣ화재 현장 피해자
좀있다가 한순간에 싹다 타버린거죠 순식간이던데요. 한순간에. 저희 집 바로 앞에 소화기 있긴 있었는데 생각을 못했어요.]
첫째 아들(13)은 중증 지적장애가 있습니다. 이 소년이 전날 시켜 먹고 남은 통닭을 데워 먹으려다 삼부자의 보금자리는 잿더미가 됐습니다.
[전모(55)씨ㅣ화재 현장 피해자
지적장애가 있어요. 중증이 돼가지고 돌발적인 행동이 많아요. 전자레인지도 있었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가스불에 한다고…]
목숨은 지켰지만 집은 폐허가 되었습니다.작은 불씨가 큰 화재로 번지기까지 별다른 조치를 할 가정용 소방시설이 없었습니다.
1989년 10월에 지어진 집이다보니 주택용 화재감지기나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전모(55)씨ㅣ화재 현장 피해자
화재 경보기, 스프링클러 그런거 다 없죠.
이쪽은 거의 다 옛날 집이라 한 20년 되었으니까...]
게다가 고등동 주거 밀집지역은 좁은 골목으로 소방관들에게 악명이 높습니다. 대형 소방 펌프차가 쉽게 지나갈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래된 단독주택에 주택용 소화시설 설치의 필요성이 더 높아집니다.
일일 생산직 아르바이트로 겨우 허기를 면하며 살아가는 삼부자에게서 찰나의 실수로 빚어진 악마 같은 화재는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전모(55)씨ㅣ화재 현장 피해자
당장 생계비랑 카드대금도 나가고 지금 제가 돈이 너무 없어가지고 앞으로 살아갈 생계가 막막합니다.]
삼부자의 딱한 소식을 들은 자선 봉사단체에서 도움의 손길을 뻗고 있습니다.
[박요한(47)ㅣ자원봉사자
불이 나서 마음이 상당히 아프고 또 아이들 신발을 봤는데 지금 실내화 같은 걸 신고 있다고 그래서 무엇보다도 빨리 신발이라도 하나 따뜻하게 준비를 해야 될 것 같아서 작은 정성을 가지고 빨리 달려오게 됐습니다.]
[첫째 아들(13) · 둘째 아들(12)ㅣ화재 현장 피해자
신발이 딱 맞네. 딱 맞아.]
[박요한(47)ㅣ자원봉사자
실내화 신지 말고 이거 신어요.]
사단법인 함께웃는세상은 삼부자의 집을 수리하는 긴급 지원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집 안에 타버린 모든 집기를 들어내고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는 집수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하니 삼부자의 걱정을 한시름 덜어낼 것으로 보입니다.
[전모(55)씨ㅣ화재 현장 피해자
도움없이는 혼자서 복구할 엄두도 못내죠. 많이 도와주시고 있어가지고…
여러분들 많이 고맙습니다. 이렇게 많이 도와주셔가지고 앞으로 큰힘이 될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식은 통닭 한마리가 앗아간 보금자리.
그곳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그들이 살아가길 희망합니다.
취재/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
영상/김동현기자 kdhit@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