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패널에 얹혀진 한지 위에 형태가 불명확한 색의 덩어리들이 보인다. 신비로운 오로라의 모습 같기도 하고 광활한 우주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먹물이 종이 위에 번져나가는 모습도 포착된다.
불분명한 이미지 위에 명확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차가운 금속 재료인 못으로 그려진 실루엣뿐이다. 사람의 몸이나 손가락, 이모티콘처럼 보이는 얼굴 등이 못으로 새겨진다.
이달 초 인천 부평구 십정동에 있는 갤러리 '밀레'에서 시작된 김동현의 개인전 '인간, 관계'의 작품 화면 위에 펼쳐진 모습이다.
한지 평면조형을 추구하는 김동현 작가는 못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평면 위에 작가의 의도대로 구체적인 형태를 갖춘 이미지는 못으로 만들어내는 형상뿐이기 때문이다.
염색 한지에 못으로 실루엣 그려
사람과 관계속 얻어진 감정 담아
이별·배신… '마음의 상처' 표현
작가의 작품의 주된 바탕은 염색된 한지다. 한지 초배지에 병에 담은 섬유 염료를 붓고 또 그 위에 염료가 마르기 전 여러 다른 색을 반복적으로 얹는다. 작가가 원하는 느낌이 드러날 때까지 이 과정은 수차례 반복적으로 진행된다.
원하는 수준에 이르면 이 과정을 멈추고 나무 널빤지에 밀가루 풀을 발라 한지를 붙인다. 이제 못으로 이미지를 그려나갈 순서다. 평온해 보이는 배경에 날카로운 금속 재질이 주는 이질적인 느낌이 도드라진다.
따뜻한 느낌을 주는 한지 위에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 재료인 못을 이용해 형상화하는 이 같은 공정에 대해 작가는 "부조화 속에서 찾아지는 조화로움을 통해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세상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얻어진 감정들을 작품에 담아냈다. 사회 초년생인 작가가 관계를 맺어가며 생긴 마음의 상처와 감정의 기복이 주로 작품에 표현됐다.
작가는 "이별, 배신, 비난 등 내가 겪은 고통스러운 감정에 주목하고 집중했지만 이러한 것들은 결국 모든 사람이 일상에서 겪는 특별할 것 없는 흔한 보편적인 경험이기도 하다"면서 "나 자신에 집중하면 얻어진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인간관계에 대한 작업을 당분간 이어갈 계획"이라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겠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이어진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