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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소방관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송탄소방서 이형석(50) 소방경·박수동(31) 소방장·조우찬(25) 소방교 등 3명은 평택 냉동창고 신축공사장에서 난 불을 제압하러 현장에 진입했다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화재는 지난 5일 오후 11시46분에 발생했습니다. 밤새 진화작업을 해 불이 잦아졌다고 판단한 건 6일 오전 7시 정도였습니다. 추가 인명수색과 마무리 진화 작업을 벌이기 위해 소방관들은 오전 7시30분 건물 2층으로 진입했습니다.

그러다 불씨가 급격히 재확산하면서 오전 9시8분 소방관 5명과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중 2명은 자력으로 대피했지만 3명의 소방관은 끝끝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화재 직전까지 현장에선 바닥 타설 및 미장 작업이 벌어지고 있었고 산소통과 LPG통 등 용접장비와 함께 불에 타기 쉬운 보온재가 다량 있어 화염이 급격히 일어나기 쉬운 환경이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불은 19시간 동안이나 지속됐고 자욱한 검은 연기가 계속 타올랐습니다.

# 평택 창고 불 '소방관들 순직'
마무리 진화 작업 중 3명 '희생'
사고 규명·피해 막기 대책 필요


지난 9일 열린 영결식에서 숨진 소방관의 동료는 다음과 같은 추모사를 보냈습니다.

"이형석 팀장님은 늘 직원들을 먼저 생각했고 항상 잘하고 있다며 옆에서 무심히 챙겨주시던 분이었다. 지금도 바로 옆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실 것만 같지만 그 모습을 이젠 볼 수 없게 됐다. 수동이는 착하고 배려심이 많은 동생이었고, 뭐든 물어보면 믿음직한 답변을 주던 우직한 친구였다. 새내기 소방관인 우찬이는 늘 밝고 활기찼고 가끔은 엉뚱한 말투와 행동으로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사랑스런 동생이자 동료직원이었다. 혹시 남아있을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놓칠까 어둡고 메케한 연기 속으로 묵묵히 들어가던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팀장님, 수동아, 우찬아!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뜨겁지도 어둡지도 않은 새로운 세상에서 편히 쉬기를 바란다"(송탄소방서 채준영 소방교)

화재 발생 원인과 소방관이 숨지는 피해를 일으킨 요인은 무엇인지 규명해야 할 요소로 남아 있습니다. 경찰과 소방은 합동 감식을 앞두고 있고 이미 건물 공사와 관련된 수사를 전개해나가고 있습니다.

소방노조는 "무리한 진압으로 동료를 잃었다"고 지적합니다. 소방을 사랑하는 공무원노동조합은 "지난해 쿠팡 물류센터 화재의 소방관 순직 사고 이후 6개월 만에 매우 흡사한 사고가 났다. 지휘부는 유족들에게 일일이 사죄하고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하라. 내부에 사람이 있었나 위험물이 있었나. 왜 우리 동료는 목숨을 잃어야 했나.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는 위기 모면성 주장은 하지 말고 지휘부의 무리한 화재 진압을 인정하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와 함께 현장형 지휘관 양성, 화재진압로봇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경기 소방의 컨트롤타워인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건물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습니다. 이른바 '소방관의 기도'로 알려진 문구입니다.

"신이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 하는 소명을 가진 소방관들을 존중하며, 또 희생된 소방관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는 소방관이란 직업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면서,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를 막기 위해 사회적 총의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도 사고 규명에 관심을 가지면서 소방관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봅시다.

# 화마가 삼킨 취약계층의 둥지
치킨 데우려다 가스레인지 켜 사고
화재보다 미래 생계가 '더 큰 재난'


재난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습니다. 화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화재 피해를 입을 수 있지만 개인이 감당해야 할 피해의 강도는 천양지차입니다. 새해 첫날 오후 화재를 당해 집을 잃은 삼부자 역시 그렇습니다.

사고는 주린 배를 채우려 식은 치킨을 데우려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붓고 가스레인지를 켜며 발생했습니다. 50대 가장은 불을 발견하고 두 아들을 데리고 밖으로 뛰쳐나왔지만 화마는 가족의 보금자리를 앗아갔습니다.

수원시 팔달구 고등동 주거밀집지역 단독주택에서 발생한 화재였습니다. 1989년 지어져 30년이 경과한 주택에서 거주하고 있었던 삼부자는 화재로 집을 잃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과거의 화재보다 미래의 생계가 더 큰 재난일지 모릅니다.

재난은 운명이 부여하는 것이지만 그 운명을 극복하는 건 사람들의 손입니다. 화재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난 8일, 대학생 자원봉사자 17명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힘을 모아 화재 현장을 복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원 주민들은 물품과 기부금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재난 앞에선 인간의 존재는 극히 나약해 보입니다. 불이 발생하는 걸 막을 수도 없고 언제 불이 꺼질지, 꺼진 불이 되살아날지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거세게 타오르는 불꽃 속으로 뛰어들어 사람을 구출해 내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걸어가면서요.

불 앞에 선 가난한 자의 가난함은 생명까지 위태롭게 하는 진정한 위험입니다. 화재가 지나간 뒤엔 생계를 이어갈 작은 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사람이 내미는, 우리 이웃이 건네는 손길입니다. 거센 운명의 불꽃 속에 우리는 서로의 손을 붙잡고 오늘을 버텨냅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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