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지만 홧김에 서방질을 한다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일방적인 반정부 편향으로 치달아서도 곤란하다. 하나의 테제를 두고 펼쳐지는 안티테제는 눈먼 복수에 머무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기실 이미 펼쳐진 진영을 두고 입장을 정리하기는 쉽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국을 둘러싼 논의였다. 당시 여당 지지자들은 조국을 비판하려면 반대쪽의 누군가를 함께 비판하라고 요구하였다. 자, 그러면 물어보자. 대학과 관련하여 김건희씨의 경력 위조에 대하여 나는 상당히 분노하는 편이다. 조국과 정경심을 비판하지 않았던 나는 윤석열의 부인인 김건희씨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다시 윤석열 편을 향해서 물을 수도 있다. 너희들은 스스로 내세웠던 공정을 과연 여전히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가.
지식인 나가고 물러설때를 알아야
일각에선 교수들 정치 참여 비난도
진영 논리에 입각한 지점에서 우리는 폐쇄회로에 갇혀 버린다. 상대에 대한 분노에 기반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옹호하려는 태도는 지극히 비지성적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스스로 달라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평가자, 관전자 또한 바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싸움의 승패만으로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지식인의 책무를 생각한다. 이 혼란한 시대에 자칭 지식인이라면 무엇을 어찌할 수 있을까. 우리 옛 훌륭한 선조들은 진퇴론(進退論)에 입각하여 자신의 거취를 정하였다. 자신이 나아가서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으리라 판단하였을 때 벼슬길에 올랐다. 벼슬에 올라본들 몸과 이름을 더럽힐 수밖에 없으리라 싶으면 초야에 묻히고자 하였다. 이것이 진퇴론이다. 무릇 지식인이라면 나아갈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은 진퇴에 관한 판단 뒤의 문제였다. 중·고등 교과서에서 진퇴론을 삭제하고 입신양명만 부각시키는 것은 그래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유가가 도가와 병립해 나간 까닭 또한 진퇴론 위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문득 옛 선조들의 진퇴론을 떠올린 것은 이수정 교수의 판단을 접했기 때문이다. 여러 측면에서, 특히 여성 관련 문제에서 이수정 교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의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참여는 의외였다. 국민의힘에 들어가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후 일련의 뉴스 기사를 보건대 그분은 자신의 전문 지식을 구부려 가면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발언을 마사지하는 데 바쁜 듯하다. 윤석열 후보는 드디어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노라고까지 입장을 밝혔는데, 이걸 또 어찌 수습할는지는 지켜봐야 하겠다. 여하튼 이수정 교수는 앞으로 내내 바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덧붙이건대 국민의힘에 입당한 페미니스트 신지예씨는, 글쎄, 무운을 빌 따름이다.
그러나 강의는 현실속에 구현돼야
강단에만 고집 게으르거나 무책임
실현 가능성 안 보일땐 '정치' 곤란
일각에서는 교수들의 정치 참여를 비난하면서 '폴리페서(polifessor)'라고 딱지 붙인다.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교수가, 지식인이 강단에서 떠드는 얘기는 현실 속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교수는 정치 속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강단에만 머무르려는 교수·지식인을 게으르다 혹은 무책임하다고 판단하는 편이다. 물론 교수·지식인의 정치 참여는 강단에서 했던 말을 현실 가운데서 실현하는 방편이어야만 한다. 그러한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때라면 교수·지식인의 정치 참여는 곤란할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렇다면 지금 현실은 어떠한가. 정치에 뜻이 있는 지식인이라면 우선 그러한 현실 진단부터 펼쳐봐야 할 듯싶다.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민교협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