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여읜 슬픔을 천붕(天崩)이라 한다. 슬픔의 크기를 하늘이 무너진데 비유했다. 그런데 자식을 잃으면 참척(慘慽)이다. 무엇에 비교할 수조차 없는 그저 '참혹한 슬픔'이라서다. 자하(子夏)는 스승인 공자가 죽자 삶을 이어갔지만, 자식이 죽자 너무 슬피 울다가 눈이 멀었다. 이순신도 임진왜란 중 삼남이 전사하자 통곡하고 통곡했다.
부모는 산소에 모시지만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 가슴에 묻는데 그치지 않고 자식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삶을 살아가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로 어린 자녀를 잃은 부모들은 유족회를 만들어 진상을 규명하고 안전한 사회를 향해 외롭게 투쟁했다.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가 어제 오전 별세했다. 꽃다운 나이에 1987년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숨진 이 열사는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방관하던 넥타이 부대들이 민주화 시위에 가세했고, 직선제 개헌을 통한 '87체제'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이 열사를 가슴에 묻은 배 여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에 참여해 민주화의 실질적 완결을 위해 헌신했다.
배 여사뿐 아니다. 전태열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2011년 별세) 여사는 스스로 노동운동가가 되어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이자 노동운동의 대모로 존경받았다.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버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 87체체의 서막을 연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2018년 별세)씨도 유가협 활동을 하며 자식의 유지를 이어나갔다. 자식을 민주화의 제단에 바친 참척의 고통을 민주화 운동으로 승화시킨 열사의 부모들도 차례차례 자식 곁으로 떠났거나 향하고 있다.
열사들의 친구들은 국회의원, 장·차관, 대통령 등 권력의 주류가 됐다. 최근 민주화 운동세력이 주축인 진보 정권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공수처는 기자들과 일반인들의 통신기록 조회를 남발하고, 민주당이 장악한 서울시의회는 여당 시장의 의회 발언을 통제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검찰과 법원 장악을 의심받는다. 5·18왜곡처벌법으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법으로 규제한다. 진영 대립은 민주화 운동 시절 버금간다.
배 여사 장례식에 열사들의 친구들이 한데 모일 것이다. 민주화 운동 시절의 순결했던 초심을 기억하는 시간이길 바란다. 배은심 여사의 명복을 빈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