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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논설실장
인공지능(AI)의 시대이다. 체스와 바둑으로 인간을 희롱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젠 인간계에 AI를 능가할 초월적 천재는 멸종했다. 인간의 감성적 판단 보다 AI의 과학적 판단을 신뢰하는 세상이 됐다. 코로나19 방역에 실패와 성과를 반복하는 정부를 인내하기보다 차라리 방역을 AI에 맡기는 편이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전지전능한 AI에게 인류가 의지하는 영역은 무한대로 확장될 것이다. 많은 미래학자들이 AI 유토피아를 낙관한다.

인문학자들의 반론은 심각하다. 전지전능한 AI가 인류를 지배하고 인간을 퇴보시키는 디스토피아를 걱정한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AI가 감정 없이 인류를 억압하는 상상력은 영화 소재로도 진부하다. 무서운 건 인류가 상상을 현실로 실현해낸 종(種)이라는 사실이다. 영화적 상상처럼 AI 디스토피아가 도래하면 인류는 AI 알고리즘에 따라 삭제와 관리 대상으로 분류돼 본성인 자유의지를 잃는다. AI 유토피아 찬미자들은 AI의 최종적 주인은 결국 인간이라고 반박한다. 그런데 전지전능한 장난감을 가진 인간이 악당이라면 대책이 없다. 권력자들은 늘 악당에 가깝다. 최악은 독재정권과 AI의 조합이다.

농담 따먹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가 AI의 알고리즘이 설계한 디지털 공간에서 춤을 추고 있다. 대중은 페이스북 알고리즘으로 크고 잘게 분리됐다. 크게는 정당과 후보로 나뉜 유권자들이 작게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담을 쌓고 있다. 집단 이익의 요구는 즉각적이고 구체적이다. 나의 탈모가 남의 희귀질병보다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SNS 알고리즘은 이들이 담장 밖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섬세하게 관리한다. 끼리끼리 모일 수 있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그 친구들이 읽는 매체와 정보를 친절하게 소개한다. 


AI 기술은 국민 갈라놓고 정치는 취사 선택
대통령은 대중을 국가앞에 통합시켜야 한다


AI가 분리하고 분류해놓은 대중은 정치권력의 손쉬운 먹잇감이다. 현재 권력이든 미래 권력이든 우호 그룹을 관리하고 타깃 그룹을 유혹해 절반의 대중만 획득하면 된다. 모든 국민을 아우르는 통합의 메시지는 소구력 없는 허언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머리를 심어주겠다는 공언으로 전국 탈모 유권자들의 영웅이 됐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이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사 들고 정용진의 '멸공' 놀이에 편승한다.

AI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AI가 정리해 놓은 유권자 시장에서 권력 유지와 획득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지만 구매한다. AI 알고리즘이 쳐 놓은 울타리에 갇힌 대중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메시지에 집착하고 작은 이익을 탐하면서 경계 이탈을 두려워한다. 결과는 참혹하다. 권력자들은 최소한의 지지로 국가와 국민 전체의 운명을 쥐고 흔들게 됐다. 트럼프 출현 이후 AI 알고리즘에 도통한 스트롱맨들이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트리고 있다는 경고는 지구촌 곳곳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은 서로를 연결하는 허구를 통해 협력한다며, 인간이 연대해 생존하기 위한 대표적인 허구가 바로 국가라고 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은 국가의 위기 시대이다. AI 기술은 국민을 갈라놓고 정치는 분열된 국민을 취사선택한다. 미국은 트럼프로 인해 심각하게 분열됐다. 우리도 대선을 거듭할수록 분열의 피라미드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여론, 대안후보 안철수 선택 李·尹에 경고장
입담·연기 말고 진지해지라며 판 다시 짜버려

대통령은 대중을 국가 앞에 통합시키는 상징적 존재여야 한다. 국민을 미래로 견인할 수 있는 통합적 인격과 감수성이 충만해야 한다. 이런 사람을 뽑아야 국가를 유지할 수 있다. 대중은 뭉치면 강하고 흩어지면 약하다. AI 알고리즘이 그어놓은 경계선을 벗어나 진짜를 찾아야 한다. 다행히 한국인은 미국인보다 이성적이다. 최근 여론은 대안 후보로 안철수를 선택해 이재명과 윤석열에게 경고장을 발부했다. '입담(이재명)'과 '연기(윤석열)' 말고 진지해지라며 대선판을 다시 짜버린 것이다. 대안을 제시하는 이성적인 대중에게서 교활한 AI를 극복할 희망을 본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