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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사회갈등을 제도권 내에 드러내고 해결책을 모색함으로써 합의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과정이어야 하지만 승자독식의 권력구조에서는 그저 원론적 언급일 뿐이다. 게다가 분단과 군사정권, 좌파와 우파의 극단적 대결이 일상화되어 있는 한국 대통령 선거는 합의의 모색이 아니라 단순다수대표제에 의한 갈등을 증폭시켜 왔다.

미국의 역사학자인 슐레진저가 닉슨 행정부를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비판했지만 미국의 대통령제는 행정부에서 독립적인 입법부, 강력한 민주주의의 문지기로서의 사법부의 존재로 강력한 대통령의 권한을 제어해왔다. 그러한 미국도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이면서 이러한 견제가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므로 선거는 더욱 적대적이고 갈등 친화적인 과정으로 치러진다.

연대 주체들 공동정부 성격 제대로 규정하고
정치적 성찰 없다면 현실정치 지향할 수 없어


대선이 5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후보들의 공약도 늘어나는 추세지만 진영 대결이 강화되는 양상에서 후보 단일화 논의를 빼놓을 수 없다. 후보 단일화는 다자구도로 선거가 치러질 때 승리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사이의 현안이다. 단일화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윤 후보의 박빙의 경쟁에서 안 후보의 한 자릿수 지지율이 승패를 가른다는 얼개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윤 후보의 지지율은 정체 내지 하락 추세이고 안 후보는 윤 후보 지지에서 이탈한 보수층과 중도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이미 10%를 넘어 15% 수준으로 한 자릿수를 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 후보는 안 후보와의 단일화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윤 후보가 안 후보를 꺾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대선 판도가 의외의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즉 이재명 대 윤석열 구도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누가 이기든 단일화 승부에서 패배한 쪽이 승자와의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뤄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는 역대 대선의 단일화 스토리가 입증하고 있다. 안 후보의 약진과 윤 후보의 정체는 기본적인 단일화 공식을 깨뜨리면서 공동정부론이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이재명 후보 측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정권심판을 강하게 주장하는 안 후보가 이 후보 측과 연대 또는 단일화를 시도하는 일은 자기모순으로서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이재명 후보가 김동연 후보와 연대 또는 공동정부를 구상하는 시나리오는 가능하지만 김 후보의 파괴력이 미미한 상황에서 얼마나 파급력을 지닐지는 미지수다.

어떠한 조합이 됐건 공동정부가 대통령제에서 실제 정치적 효과와 미래 한국사회의 정치구조로서 의미가 있는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1997년 15대 대선 때 김대중과 김종필의 DJP연대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국무총리의 동거정부를 구성함으로써 당시 자민련(자유민주연합)과 공동정부를 성사시켰다. 내각제가 연대의 고리였고 사실상 지역연합의 성격을 띠었던 연대였지만 선거에서 현실적 파괴력이 있었다. 그러나 좌파와 우파의 동거는 오래갈 수 없었고 내각제는 파기되었으며 공동정부는 단명했다. 가치가 실종된 연대의 당연한 귀결이다.

선거공학에 매몰된 연대·공동정부 화 키울뿐
더구나 역대급 비호감 선거에선 우려 더 커져


선거는 권력을 다투는 치열한 현실이고 통합된 측을 분열된 측이 이기기 어렵다는 것은 선거의 정설이다. '선거는 과학이다'라는 유명한 말은 그래서 지금도 유효하다. 그렇지만 연대와 단일화의 주체들이 공동정부의 성격을 제대로 규정하고 정치적 의미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현실권력정치 이상의 가치를 지향할 수 없다.

가치가 배제된 권력 놀음의 피해자는 유권자다. 대선 이후에 한국사회의 갈등이 더욱 늘어나고 적대와 증오가 미래 한국의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기 위해서 공동정부나 단일화 논의에 빠져서는 안 될 요소가 가치 지향에 대한 성찰과 조율이다. 현실과 이상의 중간 어디엔가 존재하는 '정치적인 것'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 후보들의 합종연횡에도 금도가 있다. 연대와 단일화를 통한 연합정치는 불가피하지만 선거공학에만 매몰된 연대와 공동정부는 후일 화(禍)를 더욱 키울 뿐이다. 더구나 거대담론의 시대정신이 실종된 역대급 비호감 선거에서 그 우려는 더욱 커진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