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한국사에서 근대기점의 문제는 아직도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은 미완의 과제다. 갑오경장, 영·정조기, 3·1 운동에 근대이행기론 등 여러 설이 있지만 만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정설은 아직까지 나와 있지 않다. 개중에는 1895년 11월 양복공인과 함께 시행된 단발령을 한국 근대의 시작으로 보자는 흥미로운 주장도 있다. 근대를 피부로 체감하면서 실제로 일상에 변화를 몰고 온 일대 사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갑오경장이라는 위로부터의 개혁의 배후에 일제의 침탈야욕과 의도가 있었듯 단발령 또한 조선 사회 내부의 혼란과 함께 경제적 이득을 얻어내려는 일본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사실 상투를 자르고 머리를 깎는다는 것은 동시대의 관습과 통념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치였다. 헤어스타일은 사람의 인상과 이미지를 좌우할뿐더러 해당 사회의 문화적 상징이자 민족적 정체성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또 두발과 의상은 신분과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표식, 이른바 '구별짓기'라 할 수 있기에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단순한 헤어스타일의 변화가 아니라 그 파급효과가 생각보다 지대한 큰 사태였다.
우선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갓·관자·비녀 등 앞선 시대의 문화가 모두 필요 없어지고 이발소나 미용실 같은 새로운 업종의 출현과 뒷받침이 있어야 하는 큰일이었다. 산업, 경제, 사회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은 것이다. 그러기에 "내 목은 자를 수 있어도 이 머리는 자를 수 없다(吾頭可斷 此髮不可斷)"라는 결기 어린 말까지 나왔다. 세간에는 면암 최익현이 한 말이라 하는데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 단발령의 역사적 상흔 때문일까? 이재명 후보의 탈모 및 가발에 대한 의료보험 지원 공약을 놓고 제법 파장이 오래간다. 포퓰리즘의 변종인 모(毛)퓰리즘이라는 비난에, 핀셋 공약이라는 찬사에, 의료보험의 재정적자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반면 윤 후보는 멸공을 외치며 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구입하여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대중적 관심을 끄는 작은 공약들도 좋지만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줄 실제적인 공약이 많이 나와 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그리고 그보다 더 우선인 것은 국민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탈모가 생기지 않도록 정치를 잘하는 것이겠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