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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중학교가 11일 열린 졸업식에서 72년이나 지각한 특별한 학생에게 졸업장을 수여했다. 1950년 인천중학교 2학년 정해용은 학도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훈련은 겉치레였을테고 군장은 부실했을 테다. 열여섯 살 소년은 참전 3개월 만에 강원도 안흥지구 전투에서 전사했다. 학교는 국가기록원에서 겨우 정해용의 학적부를 찾았다. 여든셋 셋째 동생이 명예 졸업장을, 일흔아홉 넷째 동생이 총동창회 회원증을 형 대신 받았다.

한국전쟁은 미국과 UN의 개입이 없었으면 북한의 승리로 끝날 전쟁이었다. 화력도 병력도 남한은 북한의 상대가 아니었다. 어린 소년들이 군번 없이 자의 반 타의 반 전선에 내몰린 이유이다. 화력의 열세를 정신력으로 극복했다. 정신력의 원천은 같은 민족을 향해 전쟁을 벌인 북한 공산당 정권을 향한 적개심이다. '멸공(滅共)'은 한국전쟁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남긴 유훈이 됐다.

정전 후에도 '멸공'과 '반공' 의지는 한동안 이어졌다. 군인들은 '멸공의 횃불'을 부르며 훈련했고,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광장에서 멸공을 외쳤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제적 번영이 북한을 압도하고 평화통일 정책이 지속되면서 '멸공'은 일상에서 잊혔다. 최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멸공' 놀이가 정치적 쟁점이 되고 사회적 논란으로 커졌다. 정 부회장의 '멸공' 게시물을 야당 인사들이 여러 버전으로 따라하자, 민주당 인사들이 스타벅스·신세계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일파만파가 됐다.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도서이고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한다. '멸공'은 헌법 의지이다. 멸공의 대상인 북한이 정용진을 응징하고 신세계를 보이콧한다고 을러대면 모를까, 대한민국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정용진과 신세계를 저격하니 기이하다. 북한에 대한 과도한 적개심이 한반도 평화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논리의 연장일 테다.

핵무장국 북한이 최근 최종 시험이라며 극초음속 미사일을 연달아 발사했다. 마하 10의 속도로 선회기동을 하는 극초음속 미사일은 미국도 속수무책인 비대칭 무기이다. 비대칭 전력의 남북 격차는 한국전쟁 당시와 같고, 한반도에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는 그때처럼 북한뿐이다. 장난처럼 시작된 '멸공' 놀이가 진지해진 건 오히려 다행이다. 학도병 정해용의 70여년 지각 졸업. 멸공의 전장에서 산화한 탓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