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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는 가장 빠른 새이다. 지상의 사냥감을 향해 내리꽂힐 때의 하강속도가 무려 400㎞에 가깝다. 우리 선조는 이런 매를 사냥용으로 길들였다. 태어난지 1년이 안된 매를 보라매라 하는데 길들이기 쉽고 활동력이 왕성해 사냥매 중 최고로 친다. 보라매로 들어와 사람 손에서 1년이 지나면 '수진이', 3년이 지나면 '삼계참'이라 불렀는데 해가 더할수록 사냥능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중원 왕조의 한반도 매 사랑은 유별났다. 그 탓에 고려와 조선은 중원에 조공으로 바칠 매를 잡으려 관청을 설립할 정도였다. 주인은 매 꽁지에 뿔로 만든 시치미를 매달아 표시해두는데 간혹 이 시치미를 떼고 자기 매라 주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시비가 벌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사냥매의 가치가 대단했다. 세종실록엔 최고의 송골매인 '옥송골(玉松骨)' 포획자가 양민이면 7품직의 벼슬을, 벼슬아치이면 3등급 승진을, 천민이면 쌀 100석이나 무명 100필을 포상금으로 지급한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이런 문화적 배경으로 보라매는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의 상징이 됐다. "기상의 나팔소리 나를 깨우고/ 우렁찬 폭음소리 온 겨레를 깨우네/ 짙푸른 하늘 위에 하얀 줄무늬/ 오늘도 우리는 하늘에 산다." 공군 군가 '보라매의 꿈' 1절이다. 지난 14일 용맹한 보라매 심정민 소령의 영결식이 거행됐다. 지난 11일 F-5E 전투기 엔진 고장으로 지상에 추락해 순직했다. 추락 지점이 민간인 밀집지역과 가깝자 비상탈출 스위치 대신 끝까지 조종간을 잡았다.

전투기는 보충할 수 있지만 '보라매' 1명의 전력은 대체할 수 없다. 유사시 전투기를 포기하더라도 조종사가 탈출해야 할 이유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대한민국 보라매들이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전투기와 함께 산화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살신성인의 군인 정신이라 가능한 초인적 선택이었다. 29세 심 소령의 헌신이 군을 향한 신뢰를 되살렸다. 민주당 청년대변인이 "주적은 (군)간부"라며 심 소령 영결식을 모욕했지만, 수많은 '심·정·민'의 헌신이 모여 우리는 '주적'의 도발로부터 안전할 것이다.

세계 최고의 보라매들에게 수명이 다한 F5 전투기라니 어불성설이다. 조종사가 부담 없이 탈출할 수 없는 도심지 군공항도 숙제이다. 신속하게 해결해야 한다. 고 심정민 소령. 조국의 하늘에서 영면하길 바란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