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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직원들이 지난 17일 오후 화성 현대차 남양연구소 앞에서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죽음으로 내몰린 고 이찬희씨를 추모하고 있다. 2022.1.17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고(故) 이찬희씨가 지옥 같은 회사 생활을 겪기 시작한 건 2020년부터였다. 그해 9월 현대자동차는 신차 투싼 공개를 앞두고 있었다. 투싼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던 이씨는 당시 상관의 지적과 폭언으로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회사에서 밤을 지새우는 경우도 잦았다.

그의 아내는 "당시 남편이 10년 차 연구원이었다"며 "신차 공개를 1년 앞두고 책임 연구원으로 승진하면서부터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결국 이씨는 조울증 진단을 받았다. 병원은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다. 이씨는 6개월 동안 휴직을 하게 됐다. 그러나 복직이 가까워질수록 이씨의 증상은 더욱 악화됐다. 급기야는 평소 하지 않던 가정 폭력까지 일삼았다고 한다. 그러던 이씨는 2020년 9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복직을 한 달가량 앞둔 시점이었다.

업무 스트레스 극심해 조울증 '휴직'
연구원 이찬희씨 2020년 극단 선택


유족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측에서 '공정 경쟁'을 유도한다는 명목으로 이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사연은 직장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도 빠르게 번져나갔다. 다만, 게시글은 계속해서 자취를 감췄고 사측에서 이씨의 죽음을 은폐하려 한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유족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 아내는 경인일보와의 통화에서 "믿고 싶지 않다"며 "사측의 대처가 정말, 말도 안 된다.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일을 겪었다"고 울먹였다. 또 "장례식장에선 현대차 직원이 시댁 어르신들 앞에서 '아드님이 인재였다'며 회사 생활에 문제가 없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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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직원들이 지난 17일 오후 화성 현대차 남양연구소 앞에서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죽음으로 내몰린 고 이찬희씨를 추모하고 있다. 2022.1.17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유족들 사연 게시글 속속 자취 감춰
70여명 남양연구소 앞 추모로 연대


이번엔 이씨 동료들이 거리로 나섰다. 현대차 직원 70여 명은 지난 17일 오후 6시께 화성 현대차 남양연구소 앞에 모였다. 하얀 가면을 쓴 이들은 영하의 강추위에도 양손에 LED 촛불을 든 채 '연대의 울타리'를 만들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연구소 앞에는 추모곡이 울려 퍼졌다. 현장에서 만난 이씨의 직장 동료 A씨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이씨의 죽음을 애도했다. "찬희야, 늦게 와서 미안하다. 제대로 추모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하늘나라에서는 행복하길 바란다."

또 다른 현대차 직원 B씨도 "우리는 용기를 내 지금 이곳에 모였다"며 "이렇게나마 고인을 추모할 수 있게 됐다"고 눈물을 훔쳤다. 이와 관련, 현대차 관계자는 "따로 더 드릴 말씀이 없다"며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한편, 지난해 7월 이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한 산재 신청 결과는 이달 말 나온다.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