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로펌이 중대재해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기업들이 안전보건책임자 등을 선임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는 중대재해처벌법에서 노동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가 있는 책임주체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해당 법에서 규정한 법인의 경영책임자는 대표이사 등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대표이사 등에 준하는 책임자로 안전·보건 조직과 인력, 예산의 총괄 관리자다. 사실상 '최종결정권을 가진 정도의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는 해석의 여지가 많은 부분을 법적 공방으로 가려내야 한다.
경영책임자·원청 빠져나갈 수도
현실적 인과관계 밝혀내기 어려워
이 때문에 안전총괄이사,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만 처벌을 받고 경영책임자는 법의 심판대를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원청은 책임 없다며 하청업체 꼬리 자르기식 행태가 모습만 바뀌고 재현된다는 우려다.
특히 화학사고 등으로 발생하는 재해의 경우, 앞선 가습기 살균제 참사만 봐도 피해자가 피해를 입증하고 경영책임자 등에게 책임이 있다는 인과관계를 밝혀내기 어려운 현실은 여전하다.
게다가 산업재해 사망사고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사업장은 이번 법 적용에서 빠졌다. 노동계가 법이 시행돼도 현장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는 이유다.
사망 발생 사업장 법 적용 16%뿐
제대로 된 수사·법 집행도 필요
지난달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 발생 등 산업재해 예방조치 의무를 위반한 1천243곳의 명단을 공표했다. 이들 가운데 사망자 1명 이상 등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이 576개소였는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은 92곳(약 16%)에 불과했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사업장 10곳 중 8곳이 50인 미만 사업장이며 이들은 오는 2024년까지 법 적용이 유예된다. 더구나 지난 2020년 기준 한국산업안전공단이 집계한 산재 사망자 840명 중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가 274명(32.6%)으로 가장 많았지만 이들은 아예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을 높이고 실질적으로 노동자 안전체계가 구축되려면 법 적용 대상 확대와 명확한 경영책임자의 의무 부여 등을 담은 보완 입법과 함께 제대로 된 수사·법 집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 본부는 "모호하게 규정한 책임주체 부분을 명확하게 입법 보완하고 실질적 지배력이 있다면 처벌 대상으로 볼 수 있도록 재해 발생 시 인과관계를 추정할 조항들을 법에 담아야 한다"며 "시행 예정인 중대재해처벌법 자체로는 현장을 크게 바꾸지 못하겠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 안전을 위해 앞으로 부족한 부분을 추가 법 개정으로 보완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시은·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