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주니어 예성이 노래한 '내 욕심이 많았다'(작사 황승찬·조은희, 작곡 최희준·황승찬)에서 과유불급 사랑의 과정과 결과를 탐색해보자. 노랫말의 시작은 연인과의 이별을 앞둔 화자의 자조 섞인 후회로 출발한다: '참 많이 행복했었다/너란 사람을 만나서/내 가슴은 매일 설렜고/내 두 눈은 너만 보였고/그땐 너에게 미쳤었지/널 사랑한단 이유로/내 안에 더 가두고/지치게 했었지/내 욕심이 많았다/널 그래서 잃었다'. 어느 날 화자는 '너란 사람을' 만난다. 그를 보자마자 사랑의 강물에 풍덩 빠지는 추입애하(墜入愛河)의 감정에 사로잡힌다. 만남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가슴은 더욱 설레고 하루하루의 삶은 '행복' 그 자체이다. 화자의 두 눈은 그 사람만 보이고 점차 연인과 사랑의 광기에 흠뻑 빠진다.
유가의 과유불급 실천하긴 어렵다
인간 내면에 채워질 수 없는 욕망
즉 플라톤의 에로스적 충동 때문
문제의 핵심은 연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연인을 자신의 내부에 굳게 가두어 구속함으로써 연인으로 하여금 힘들고 지치게 만든 점이다. 연인에 대한 과욕이 사랑의 화를 잉태하고 화가 두 사람 사이에 고통스러운 별리의 결과를 낳게 한다. 즉 연인에 대한 화자의 사랑이 '넘치고 넘쳐흘러' 역설적이게도 다시는 연인을 볼 수 없게 되는 비극적 사랑의 결과로 이어진다. 화자는 이러한 사랑의 모순을 '상처만 남은 헛사랑'으로 정의한다. 급기야 화자는 자신의 과도한 사랑의 욕심이 초래한 불행한 참사를 인정한다: '알지 못한 그땐/그래 내 욕심이 많았다'.
화자가 사랑의 폭풍우에 몰입할 때 자신은 무엇이든지 '다 잘해낼 것 같았다'라고 되뇐다. 이 세상에 연인 만한 사람이 없다고까지 확신한다. 행복감에 충만한 화자는 '눈이 멀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사랑은 눈이 머는 것이고 친구 사이의 우정은 눈 감아 주는 것이라고 니체가 설파하였듯이 화자도 연인에게 두 눈이 멀고 연인의 단점을 눈감아 줄 정도로 깊이 사랑에 빠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나친 배려가 오히려 연인의 속마음까지는 헤아려 볼 수 없게 만든다. 그 결과로 연인을 '울리고 힘들게' 하는 사랑의 파국으로 이어지게 된다.
술이 넘치지 않는 계영배처럼
지금 절제된 덕이 꼭 필요한 때다
영국 작가 D.H.로렌스는 장편 '연애하는 여인들'에서 주인공 버킨의 말을 빌려 남녀관계는 별들의 평형 관계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늘의 뭇별들은 서로 무질서하게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균형을 이루며 우주 질서를 유지한다. 남녀 관계도 한쪽의 지나친 구속 없이 두 존재의 순수한 평형을 유지해야 진정한 관계로 거듭날 수 있다고 언급한다. 이런 점에서 곡목 '내 욕심이 많았다'의 화자는 자신의 연인에 대한 일방적이고 독점적인 애정 공세로 인해 오히려 관계 단절의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나 싶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화자의 후회막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연인에게 '해줄 수밖에 없는 말'을 이렇게 절규하며 남긴다: '더 버리고 버려도/내 욕심이 남아서/너 없인 너 없인/나 안 될 것 같아/마지막 부탁이다/여전히 너는 내 사랑/알아주라 제발/그래 그래 나는 네 곁에 있고 싶다/아직 내 사랑이 남았다'. 화자에게는 아직 연인에 대한 강한 미련이 남아있다. 사랑의 복원에 대한 희망을 드러낸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면 모자람만도 못할 수 있다. '아직 내 사랑이 남았다'라고 울부짖는 화자의 뜨거운 심장소리가 들려오는 듯싶다. 그러나 풀잎 위에 맺힌 이슬도 무거우면 떨어지게 마련이다. 과유불급 사랑의 암울한 종말을 유념해야 한다.
불가의 중도(中道)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中庸)을 실행하기란 힘들다. 유가의 과유불급의 본질을 실천하기도 또한 어렵다. 인간의 깊은 내면에 채워질 수 없는 근원적 욕망, 즉 플라톤이 언급한 에로스적 충동이 내재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술잔의 7할 이하를 채우면 술이 넘치지 않는 계영배처럼 과도한 욕망의 균형 잡힌 절제의 덕이 꼭 필요한 때가 지금이다.
/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