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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문화평론가
새해 들어 임시 선별진료소에 한시적으로 업무 지원을 나가고 있다. 코로나19 시국이 벌써 3년째다 보니 다양한 지역의 검사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아봤다. 그때마다 덥고 추운 날씨에 하루종일 같은 말을 반복하며 근무하는 분들이 너무 힘들어 보였다.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내면서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랐는데 현장에 오게 될 줄이야….

일단 도착하면 겉옷을 벗고 점프슈트처럼 통으로 된 레벨 D 전신 보호복을 머리까지 뒤집어쓴 후 신발에도 보호 슈즈를 덧신는다. 마스크도 새것으로 바꿔 쓰고 페이스실드 착용 후 라텍스 장갑까지 끼고 나면 준비 완료.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는 착용했던 방호복을 모두 벗고 다시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므로 안 가는 쪽을 택한다. 한 번이라도 벗은 방호복은 재사용이 되지 않으므로 근무하는 동안 물이나 커피처럼 뭔가를 마시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불확실한 상황 가득한 일상이지만
확실한 루틴으로 흘러가는 진료소


전문 인력이 아닌 임시 지원 인력인 내게 부여된 업무는 어쩌면 간단하지만 꼼꼼함이 필요하다. 검사받으러 온 사람들이 써서 제출하는 설문지 내용을 확인한다. 2인 1조로 한 명은 그 내용을 스티커에 써서 검체에 붙이고, 한 명은 그 내용을 엑셀에 정확히 입력하는 것이다. 내가 입력한 정보를 바탕으로 다음날 오전 10시 전에 검사 결과를 안내하는 셈이다. 처음에는 잘못 입력할까봐 너무 긴장해서 몇 번이고 확인을 거듭했는데 몇 번 해보니 익숙해졌다. 물론 입력한 정보는 검체실에서 다시 한 번 체크하는 과정을 거치며, 혹시라도 잘못 입력한 부분은 그 과정을 거쳐 수정된다. 코로나 검사 결과를 휴대전화로 잘 받아봤다면, 일일이 그 정보를 입력하고 수기로 쓰고 이중으로 확인하고 검사하고 안내하는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페이스실드가 시야를 가리고, 귀까지 덮는 모자에 마스크까지 쓰고 앉아있다 보면 잘 안 들릴뿐더러 라텍스 장갑을 낀 손에서 땀이 차오른다. 사람들이 간격을 두고 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상시 대기 상태다. 근무하는 반나절 동안 많게는 200명, 적게는 100명 정도의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사람들의 글씨체가 백이면 백, 모두 다 다르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다. 설문지를 받았을 때 정자로 반듯하고 크게 적은 글씨를 보면 반갑고, 흘려 쓴 글씨를 보면 신경이 곤두선다. 게다가 글씨를 알아보기 어려운 경우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대화를 해야 하는데 가족 중에 확진자가 있다면서 마스크를 벗고 이야기하시는 분이나 인후통, 오한, 열, 기침, 가래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분이 오시면 무섭기도 하다.

외국인도 많다. 한국어를 아예 못하는 분이나 외국인등록증이 없는 분이 오기도 하고, 이름을 보기 전에는 외국인인지 전혀 모를 정도로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분도 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또 하나 있는데,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 번호가 1과 2만 있는 게 아니라 태어난 연도와 국적, 성별에 따라 3부터 8까지 있다는 사실이다.

막연히 알고있던 많은 사람들 노력
생생하게 알게돼 선물처럼 느껴져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일 해 나갈 것


설문지 내용 입력이 끝나고 식별 스티커가 붙은 검체를 받아든 사람들은 바로 옆 검체실로 이동, 공포의 '콧구멍 찌르기 검사'를 받게 된다. 아이들만 무서워할 것 같다는 건 착각이다. '잠깐만 참으면 금방 끝난다. 그렇게 뒤로 가면 검사 다시 해야 한다. 가만히 계셔라…'. 의료진들이 아이부터 어른까지 어르고 달래는 소리와 백인백색의 반응들을 라이브로 듣다 보면 근무자들도 잠깐씩 웃게 된다. 근무가 끝나면 야외에서 보호복부터 모든 걸 다 벗어서 버린 후에 실내로 들어와야 하는데, 눌리고 엉망이 된 머리가 볼 만하다.

모일 수 있는 인원도, 영업시간도 2주 단위로 바뀌는 등 불확실한 상황들로 가득한 일상이지만 최소한 선별진료소의 일상만큼은 확실한 루틴으로 흘러간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선별진료소의 시간은 그래서 선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들의 힘으로 버티고 있는 지금, 마스크 없는 일상을 기다리며 나 역시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려 한다. 2022년 새해, 각자의 확실함을 찾아 일상을 단단하게 만들어 나간다면 코로나 시국도 언젠가는 끝나지 않을까?

/정지은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