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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상적인 공동체를 위해 시인을 추방해야 한다'. 플라톤이 주장했던 이른바 시인 추방론이다. 그는 '국가' 10권에서 진리와 거리가 있는 시와 연극과 같은 모방이 세상을 혼탁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같은 책 2권과 3권에서 서사시가 신과 영웅을 비웃거나 못난 존재로 묘사하기 때문에 교육적 측면에서 유해하다고 했다. 그는 인간의 영혼이 시에 대해 두 가지로 반응한다고 했다. 하나는 이성(logos)이고, 다른 하나는 감정(pathos)이라고. 그가 문제 삼은 것은 후자였다. 극과 미디어로서 시가 인간의 감정적인 부분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연극이나 낭송의 형태로 시가 연기되면 청중의 영혼은 자신을 잊고 이성적인 기능은 봉인된다는 것이다. 시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의해 마음이 지배된다는 것. 플라톤이 고발하고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바로 비극에 속하는 시였다. 물론 그의 주장은 아테네식 민주주의 반대와 민주정 프로파간다에 동조하는 호메로스 등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지식이야말로 추상적 명제의 체계가 아니고, 그 사람이 지닌 하나의 덕이라고 했다. 지식은 그 사람이 스스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보았다. 어떠한 정보를 보고 얻은 것만으로는 '알고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플라톤이 말한 시와 극에 버금가는 내용이 유튜브나 카톡 등에 넘쳐나고 있다. 똑같은 동영상을 보면서도 한쪽만 믿거나 은밀한 음모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을 믿는가를 좌우하는 것은 우파냐 좌파냐, 부유한지 가난한지, 혹은 믿는 종교의 차이가 아니라 지적 악습(epistemic vices)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지적 악습이란 편견이나 마음을 열지 않는 폐쇄성, 특정 도그마에 대한 고집을 말한다. 어떤 정보를 근거 없이 무시하거나 사실관계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문제는 지적 악습이 가짜의 진원지이자 현실과 거리가 있는 정책의 바탕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출규제 강화로 잔금대출 못 받아
아파트 입주하지 못하는 비율 증가
부동산·금융정책으로 국민들 피폐


대선에서 등장한 각종 통화와 녹취록을 보노라면 우리 시대의 감시망이 기관·기업·개인들에 의해서도 일상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 녹취록은 주로 법정에서 증거로 쓰였다. 그러나 핸드폰의 성능이 고도화하면서 쉽게 통화내용을 녹음할 수 있다. 말이 문자가 되고, 그것이 영상으로 쉽게 재현되는 시대다. 그것이 조작이든 진실이든 유튜브나 SNS를 타고 순식간에 전파된다. 플라톤은 '대화편'에서 극을 통한 시적 퍼포먼스에서 연기하는 측이 청중에 대한 지배권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가짜를 만들어 상대를 비난하고, 편을 가르는데 동원된다. 수많은 동영상, 가짜 뉴스, 녹취록 등에 의해 국민의 삶이 불편하고 팍팍해지고 있다.

가짜들 때문에 21세기판 시인 추방론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지적 악습은 정부의 정책에도 반영되고 있다. 정부는 징벌적인 세금부과로 집값을 잡는다고 수도 없이 말했다. 그러나 60조원의 초과 세수라는 황당한 결과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로 부동산을 잡았다고 한다. 그러나 대출취약자들은 카드깡과 상품권 할인이라는 금융 암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의 최근 발표를 보면 대출 규제 강화로 잔금대출을 못 받아 아파트 입주를 하지 못하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선거에 무관심했던 국민도 이번 대선과 지방선거에 관심이 크다. 부동산과 조세, 주식과 암호화폐, 대출과 금리 등 정책의 실패가 자신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관료·정치인 대국민 사과 절실
삶에 지친 국민에게 최소한의 예의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 박스권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가 평화정책에서는 문재인 정부를 계승하되 부동산과 금융정책에서는 단절에 가까운 차별화를 시도하지 않는 한 지지율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 선거에서 최종 판단권은 플라톤이 비판한 시인이 아니라 국민에게 있다. 지적 악습에 바탕을 둔 부동산과 금융정책으로 피폐해진 국민을 생각한다면 당사자였던 일부 관료와 정치인의 솔직한 대국민 사과가 절실해 보인다. 그것이 삶에 지친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된다. 이번 설 명절이 문 대통령에게도 국민과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싶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