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역사는 자연의 한계와 제약을 넘어서기 위한 과학기술 개발의 역사였으며, 동시에 인간 자신이 인간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한 기나긴 투쟁의 역사이기도 했다.
사물인터넷·메타버스 등 4차 산업혁명은
생활의 편리와 경제적 가치에 중점 둔 것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homo, imago Dei)'이라는 헤브라이즘이나 인간을 세상의 중심으로 보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anthropos metron panton)'라는 프로타고라스 언명, 즉 헬레니즘의 인간관이 그러하다. 이것이 중세 신본주의(神本主義)로, 그리스·로마시대의 인문적 가치에 대한 주목과 재생을 외친 르네상스시대의 휴머니즘으로, 그리고 자연법사상과 계몽주의 등을 기반으로 발전해온 휴머니즘이 오늘날 인권·자유·평등 같은 근대적 인간관과 이념으로 완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 자신의 인간에 대한 인식 하나를 바꾸는 데도 수천 년의 세월과 수많은 역사적 전환과 새로운 사상가들의 출현과 엄청난 이들의 피와 희생이 뒤따랐다. 이 같은 개념의 휴머니즘은 1800년 무렵 독일의 교육학자인 니트함머(F. J. Niethammer)가 처음으로 제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의 자유와 평등과 인권은 불완전하다. 자유민주주의가 그렇다. 자유민주주의는 과거 시대에 비하면 비교의 대상이 없을 만큼의 눈부신 진보를 이룩한 것이나 근대 부르주아의 이해에 바탕을 둔 개념이다.
가령 정치적 평등만을 일반 시민과 대중들에게 허용하고, 경제적 평등이나 권리는 도외시하는 시스템으로 기득권 계급과 소외 계층 사이의 넘을 수 없는 아득한 장벽을 만들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자본주의의 대안이 아닌 또 다른 억압적 근대인 사회주의는 이런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불평등 사이의 간극을 비집고 들어온 이념이었다.
새로운 대안 찾기위해 마음·행동 바꿔야
문명전환에 앞서 생각의 대전환 종요롭다
그러면 동아시아의 인권 사상은 어떨까. 도덕성과 예의를 갖춘 인간을 참다운 인간으로 보는 유교의 군자·소인론, 마음공부와 수행을 통해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고 모두가 대자유인이 되자는 불교의 가르침, 인간이 하늘의 모상이 아니라 하늘 그 자체라는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같은 '동아시아적 휴머니즘'도 있었다.
서구 휴머니즘의 한계를 보완하는 장점은 있지만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인식과 태도, 인간의 인간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인류세 문명의 폐해와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를 신본주의와 인본주의(人本主義)의 역사로 해석하면서 지금의 환경문제를 야기한 인간중심주의의 폐단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은혜의 관계로 보자는 관점, 즉 '신에서 인간, 인간에서 우주·만물 위주의 대전환', 요컨대 '사람이 하늘'이라는 시각에서 '모든 만물이 하늘'이라는 은본주의(恩本主義)로 전환하자는 교산 이성택 교무의 제안을 특별하게 주목해보고 싶다.
사물인터넷·인공지능·메타버스 등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은 생활의 편리와 경제적 가치에 중점을 둔 것이지 인류세를 넘어설 새로운 대안이 아니다. 대안은 제도를 바꾸고 과학기술을 혁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마음의 대전환에서 찾아야 한다.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배제한 문명론과 과학기술론은 모두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문명전환에 앞서 생각의 대전환이 종요롭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